남 좋은 일, Yo!
전 남자친구가 스쳐 지나가며 Yo!라고 인사한다. 잘못 들었나?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요! 만 들은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진짜로 Yo! 하고 지나갔다. 모임에서 쿨하게 전여친과 새여친후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신난 건가? 아메리칸 마인드에 심취해 절로 Yo! 가 나온 건가? 나를 다른 여자로 착각해 그들만의 코드인 Yo! 를 내게 한 건가?
그래, 그는 한 달 전 내 아련한 눈빛을 읽었을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 붙잡지 않았고, 붙잡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를 오랜만에 보는 것은 내심 기대했다.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그를 볼 수는 있다는 것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친구처럼 신뢰하는 사이로 헤어진 것은 아니라서 불편한 마음도 있고 안전 이별에 대한 조금의 걱정도 있었지만 그리운 마음에 보고 싶기도 했다. 다시 사귀지 않더라도, 얼굴이라도 가끔 편하게 보는 사이도 나쁘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한 달 만에 다시 보는데 또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의미 부여하는 것은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Yo! 할 만큼 쿨하고 신났으니까! 저번에는 타의 반으로 내 옆자리에 앉았고, 이번에는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내 물건과 가방을 보고도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번에도 누가 그쪽으로 초대해 타의로 앉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새로운 썸녀는 다른 테이블에 있는데? 그리고 아직 그 테이블에 자리 비어있는데? 왜 내 옆자리에 앉은 거지? 내 옆자리에 앉으면 그가 관심 있는 여자가 잘 보이는 자리인가? 오만가지 추측이 든다.
문제는 바로 그 신뢰다. 신뢰가 안 생겨서 헤어졌으니, 내 옆자리에 앉은 의도에 대해서도 신뢰가 없다. 그래서 조금 불안했다. 자연스럽게 대하면서 관계를 조금은 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나쁘지 않으면서도 왜지? 하며 이상하고 불편했다.
이 이상한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달 새 그는 연예인이 되었다. 그가 등장하니 모임의 분위기가 술렁거린다. 모임의 새로 온 언니들에게 그는 연예인이 되어 있었다. 나만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 줄 줄 알았는데, 이제 그는 나만 빼고 웃게 해주는 모두의 연예인이 되었다. 우리 둘 관계에서 인싸 성격은 오히려 나였는데, 나는 아싸 중에 아싸, 그는 인싸 중에 인싸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내가 골라준, 그의 신체적 결점을 완벽히 보완해 주고, 잘생겨 보이게 만들어주는 템빨로 그는 연예인 닮은꼴, 모임 핵인싸가 되었다.
어떤 언니가 그가 좋다고 난리다. 픽업라인(pickup line, 작업멘트)도 어쩜 내가 했던 것과 똑같다. 나는 그에게 개인톡을 보냈는데 그 언니는 다수를 향해 외친다. 오빠, 재밌어서 같이 놀면 재밌을 것 같다, 언제 같이 놀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그 언니는 재밌어서 같이 놀면 좋겠다고 다수를 향해 외친다. 그리고 전직 나만의 연예인에게 자기가 그 얘기를 했다고 전해달라고 한다. 물론 다행히 나한테 말한 건 아니다. 그랬담 더 재밌었을 텐데…(ㅋㅋㅋㅋㅋㅋㅋ;;) 전남친을 향한 누군가의 애정 고백을 의도치 않았지만, 어쨌든 들어버렸다.
어쩌면 그냥 그가 진짜 재밌어서 소환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임에 재밌는 남자가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전남친이고 한 명은 절친이다. 소위 엑스(ex)오빠와 베프(bf)오빠다. 물론 엑스(ex)란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골 땅콩이자 분노와 미련이 적절히 버무려진 디핑 소스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엑스오빠라고는 절대 칭하지 않는다. 그 놈이라든지 이름을 변형한 별칭이라든지로 칭한다. 어쨌거나 재밌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역시 나뿐만이 아니다. 나도 꽤 재밌는 여자인데, 재밌기만 한 여자가 미남을 만나기는 어려워도, 재밌기만 한 남자는 미녀와 꽤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다. 나의 베프오빠처럼 베프로라도 어리고 예쁜 여자와 언제든 이야기하고 만날 수 있다.
여자들은 재밌는 남자를 좋아한다. 똑똑한 여자라면 더 재밌는 남자를 좋아한다. 재밌으려면 머리가 꽤 좋아야 하고, 머리 좋은 재밌는 남자는 웃길뿐더러 대화도 보통 잘 통한다. 그런데 나의 그 놈은 연애의 시작까지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댄디한 패션센스까지 갖췄다. 가을 타는 언니들이 갑자기 즐거워진 이유는, 그리고 모임이 갑자기 술렁거리게 된 이유는 그 놈이 그냥 말하는 게 재밌어서가 아니라 키도 크고 얼굴도 괜찮고 패션센스도 괜찮은데 위트까지 있어서다. 내가 골라준 바로 그 템으로 그의 외모는 나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점보다 한 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래서 언니들이 신났다. 그도 전여친에게 Yo! 를 시전 할 만큼 신났다. 나만 시무룩하고 모두가 신났다.
황금어장에서 그가 혼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엑스(ex)여자는 자리를 피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