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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나기로 결심한 이유

한국인과 문화차이를 느낀다면 외국인 추천합니다

by 해센스

비교적 최근에 한국인과 연애를 할 때도 마지막으로 너랑 잘 안되면 나는 외국인 만날 거라고 얘기했다. 외국인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고 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다. 혼혈 아기들이 예쁘기도 하고 TV에서 외국인 아빠가 자녀 교육 시키는 것 보면 좋아 보여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도 다양한 문화를 가까이서 접하며, 좀 더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인과 결혼한다면, 그것대로 편한 점들이 있겠지만 내 인생에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좋아했고, 오래 만났던 과거의 남자친구와 잠시 헤어졌던 적이 있었는데, 혼자 홍대거리를 거닐다가 헛헛한 마음에 타로를 보러 조그만 점집에 들어갔다. 타로만 보려고 했는데, 사주도 보라고 해서 뭐 까짓것 간단히 사주풀이도 들었다. 그때가 2021년도였다. 전혀 내가 살아온 인생이나 내 생각에 대해 귀띔을 해준 적이 없었는데, 풀이해 주셨던 여자 선생님께서 외국인 만나면 잘 맞을 것이라고 하셨다. 평소 생각하던 것을 신점이든 사주든 어딘지 모르게 권위로운 것을 통해 듣게 되면 꽤나 큰 당위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때부터 확실해졌다. ‘나는 결국 외국인을 만나야 하는구나!’


외국인과 결혼해서 다문화 가정 꾸리고 혼혈 아기 낳고 싶으면서도, 한국인과 연애를 계속했던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의 영어는 꾸준한 노력으로 외국에서 단 1년 정도 거주한 경험만 있는 국내파임에도 불구하고 계단식으로 향상해 왔다. 영어 공부는 늘, 언제나,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어를 지금처럼 유창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몇 년 전에도 국제연애를 할 정도의 영어실력은 되었다. 영어로 연애를 시작하는데, 아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문제는 언어실력보다는 연애실력에 있었다.


그러니까 외국인과 연애를 시작하고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애착 유형 검사를 해보면 안정형 애착이라고 나온다. 한 명의 좋은 남자,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남자가 애착 유형까지 변화시켜 줬다. 하지만 내 지난 10년을 돌이켜보건대, 아주 지난한 세월 동안 불안정 애착으로 살아왔다. 연락이 몇 시간 동안 안 되면 불안하고, 특히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것 같다면 더욱더 불안하고, 연인이 말없이 잠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2017년도에 나름대로 잘 맞았던 내 취향의 메트로섹슈얼한 능력 있는 한국남자와 헤어졌던 이유도 그가 하도 잠들었다고 하는 날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주사가 어딘가에 핸드폰을 두고 오는 것인지 지하철에 핸드폰을 두고 내리는 적도 꽤 잦다고 했다.


어디선가 주워듣고 배우기로는 외국인과 연애를 하려면 그런 연락과 같은 것들에서 쿨~해야 할 것 같았다. 2~3일 동안 문자를 주고받지 않아도 그냥 각자 할 것 하느라 바쁜가 보다, 여자들이 섞인 무리와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겨도 개인의 자유니까 그런가 보다, 술에 취해 말없이 잠들었다가 다음날 실컷 늦잠을 자고 오후 늦게서야 연락이 되어도 그런가 보다, 쿨~해야만 외국인과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이라도 문화가 다 같진 않겠지만, 최소 동아시아문화권이 아닌 사람을 만난다면 어쨌든 쿨~하고 한국 남자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존중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거울치료로 제발 나를 좀 쿨~하게 내버려 두는 사람과 드디어, 아주 간절히 만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난 외국인을 만날 최적의 타이밍이 된 것이었다. 나 역시 전보다 쿨~해졌다. 다양한 서구권 심리학자가 쓴 심리 관련 서적을 읽고 자아 성찰하는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정말 나의 자유와 바운더리를 중요시하는구나 깨달았고, 그렇다면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잘 안 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 사람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근본 관념이 바뀐다면 행동 역시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 내가 자기 결정권을 중요시하고 통제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당연히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외국인을 만났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후속 편을 기대하시길 바란다. 아직 알아가고 있는 단계인데,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내가 좋다고 표현해 줘서 높은 확률도 연인이 될 것 같다. 국적을 떠나서 잘 맞다. 유머코드도 너무 잘 맞고,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 아주 잘 맞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내가 만났던 한국 남자들 그 누구와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잘 맞다. MBTI도, 별자리 궁합도, 사주 궁합도 그냥 다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친한 오빠한테 태어난 연월일을 보내서 사주까지 이미 체크했다. ㅋㅋㅋ사주 어플을 돌릴 때 태어난 나라에 맞게 시간 조정이 필요하다며 오빠는 그의 국적도 물었다. 오빠의 첫마디가 “얘, 사주가 완벽한데?” 였다.


좋은 얘기만 해주다가 “여자를 좋아하고 인기가 많으니까 네가 잘 관리해야겠다. ”라고 하길래, 잠깐 걱정이 몰려오다가 쿨~하게 “만나다가 그런 낌새 있으면 놔주죠 뭐~” 라고 했다. 그리고선, 외국인 썸남에게 “너, 여자 좋아해? 그러니까 다른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좋아해?” 라고 물어보니까, “You are a woman right!? so I like you.(너 여자잖아, 맞지? 너 좋아해.)”라며 끼를 부린다. 이어서 “아, 내가 플러팅 잘하냐고? 아니, 나 끔찍해.”라고 한다. 내 기준에선 나름 표현을 잘하는 것 같은데 얘의 피를 구성하는 그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선비 같은 축에 속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대화한 걸로 내가 보기엔 넌 그냥 잘 맞는 사람 한 명 찾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라고 다시 물어보니까, 맞다고 매일 그냥 편안하게 함께할 사람 찾는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너는 책 보고 나는 스포츠 보고 말없이 있어도 좋다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오래 함께할 사람 만나고 싶다고 한다.




역시 예상대로 한국 남자들에게 느꼈던 뭔지 모를 안 맞는 느낌은 문화 차이가 맞았다. 이 친구는 유럽과 아시아계 혼혈이고, 아버지가 해외에서 일하셨어서 자란 곳은 또 제3의 국가이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생각하는 것이 매우 열려있는데, 생각이 열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귀거나 결혼했을 때 갈등이 될만한 요소가 현저히 줄어든다. 생각이 열려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웬만한 것들이 이 친구에게는 문제가 안될 것 같다.


당연히 타투에 대해서도 연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닌 개인의 자유라고 간단히 의견 일치가 되었다. 하반기에 스쳐갔던 한국 남자들은 다 타투가 싫고, 나중에 후회할 수 있고, 늙었을 때 피부가 늘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를 타당하다는 듯이 대었다. 그건 네가 타투를 하기 싫은 이유이지 내가 타투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니다. “내 몸이고,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나한테 있는데?”라고 하니 “내 건데?”라는 황당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어차피 타투할 것 아니면 우리 사이에 문제가 될 의견차이는 아니지 하고 넘어갔지만, 실제로 나는 단지 타투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에 대해 물은 것이다. 타투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얼마나 내 자유와 즉흥성을 존중해 줄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알고 싶어 물은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결혼할 사람과 커플 타투를 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결혼에 대해 거의 하나뿐인 로망이라면 로망이다. 그냥 좀 인생 무겁지 않게, 때로는 즉흥적이게(spontaneously), 로맨틱하게 살고 싶다. 몸에 커플타투 하나 있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후회하면 후회하는 대로, 늙어서 늘어지면 늘어지는 대로 함께 이야기하고 웃어넘길 추억 하나 진득하게 새기고 싶다. 세월 지나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고 말하게 되면 그것 또한 재밌는 대화일 테니까. 내가 연인에게,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애정이 가득 담긴 “She’s crazy. (얘 미쳤어)“이다. 내 베프들이 나를 좋아하는 그런 이유들로 사랑받고 싶다.


결혼식에 대해서도, 내가 식을 올리고 싶지 않다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 남자친구(특히 내가 만날 가능성이 높은 평범한 직장인)와는 오랜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거나, 결국 결혼식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이 친구라면 내가 어떤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해해 줄 것 같다. 반대로, 이 친구의 부모님을 위해서 그 나라에서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따를 의향이 있다. 왜냐면 난 보여주기식 문화나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기 싫은 것이니까. 외국에서 똑같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고 해도 내가 그곳에 살 것은 아니니까 괜찮다. 결혼식은 하나의 예이지만 “남들이 하니까~, 부모님, 조부모님 체면이나 생각 상~ 등”과 관련된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인한 답답함과 끝장 토론 갈등은 외국인을 만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사귀기도 전에 결혼 생각하는 것은 결혼병에 걸린 30대 초중반 여자라 외국인을 만나기로 했어도 어쩔 수 없다. DNA에 각인된 생물학적 모성애 때문인지 요즘 아이가 갖고 싶다. 당장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키우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결혼해서 안정감을 누리고 싶다기 보다는 여성의 DNA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모성애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결혼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좋으면 평생 함께하고 싶고, 아이 얼굴도 한 번 생각해 보고,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흔한 금사빠가 앓는 그렇고 그런 증세 중 하나다. 외국인을 사귄다면,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결혼 얘기는 절대 금기어인 줄 알았다. 게다가 이 친구는 지금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보다 아주 조금 어리긴 하지만, 어쨌든 연하남이다.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미래 얘기도 한다. 이 친구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중에 큰 개랑 고양이 키우고 싶다, 나는 여건만 되면 아이 낳아서 키우고 싶다 이런 대화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 친구가 먼저 너네 부모님은 외국인 데이트하는 거나 결혼하는 것 괜찮게 생각하냐고 물어봐서 ‘아, 초반에 결혼, 아이 얘기가 금기어가 아니구나. ’ 싶었다. 연락과 만남, 미래에 대한 자연스러운 얘기들, 이런 것 모두 외국인 만나면 조금 내 평소 연애 스타일과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모든 것이 똑같다. 그리고 이 친구도 1년 내로 한국어를 엄청 잘하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집에서 명절도 지내고 제사도 지냈어서 어릴 때부터 전 부치는 조기 교육을 받은 일등 며느리감(마음만 먹는다면)이다. 엄마가 전 동그랗게 잘 부치니까 나중에 시집가면 이쁨 받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아니, 난 전 안 부칠 건데, 제사도 안 지낼 건데?’ 어릴 때부터 확신했다. 남편 집안 제사 지내는데 내가 혼자 전 부치고 있을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대신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다른 종류의 음식을, 피부색 다른 시어머니와 함께 만들고 있을 지도.


나중에 우리 집에서 명절을 지내면 나는 눈 땡그랗고 인형같이 생긴 아기 안고 있고, 외국인 남편이 엄마 옆에서 같이 전 부치고 있을 것 같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나의 외국인 연하 남편이 엄마랑 도란도란 한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전 부치고 있을 것 같다. 날 실제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상하리만큼 해일리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참한 며느리 되는 대신 참하고 똑똑하고 코도 오똑한 사위 집에 데리고 올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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