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물에 대한 생각과 그간 근황
브런치가 전체공개이고 지인들이나, 새로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도 내가 알게 모르게 내 글을 읽을 수 있다 보니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난해 브런치 주제 중에 하나가 ADHD약, 항우울제, PMS 등 정신과적 문제과 약물 복용 후기였다. 실제 복용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초에 두어 달, 그리고 9월부터 11월까지 두어 달 정도 복용하고 지금은 완전히 끊은 상태이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다시 ADHD약이나 항우울제를 복용할 생각은 없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정신과에 방문하는 것에는 여전히 마음이 열려 있다. 그런데 약물에는 꽤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고,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이나 햇볕 쬐기, 숙면, 식단, 다른 건강보조제 섭취 등 보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다른 건강 상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약을 끊게 됐다. 아토목세틴이 간에 무리가 많이 가는 약이고 부작용 중에 위장 장애가 있는데, 나의 경우엔 위장 장애 증상이 심했다. 평소에도 스트레스받으면 역류성 인후두염으로 고생하는데, 그 약이 증상을 심화시켰다. 그리고 연례적인 건강 검진을 했는데 간수치가 갑자기 높게 나왔다. 평소에도 가끔 맥주 한잔 정도만 마시고, 약을 먹는 동안에는 특히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지냈다.
거기다가 11월부터 감기가 너무 심하게 걸려서 감기약을 먹었다. 당연히 감기약에다가 간에 무리가 가고 속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정신과약까지 한꺼번에 먹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약을 쉬었고, 약을 처방받기 직전의 스트레스 상황도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치유에 필요한 시간도 지나가서 약을 안 먹게 되었다.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연애를 잘 유지하고 싶어서 약을 먹었다. 불안과 감정기복을 줄여주는 약을 먹으면 연애를 좀 더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웃긴 건 연애가 끝나면서 스트레스와 자책감 때문에 약을 먹기 시작했고, 약을 먹으면서도 안될 일은 안 됐다. 그리고 시간을 돌려서 그 연들을 이어 붙이거나 잘되게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런 연애, 맞지 않는 인연이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약을 먹는 것이 해결 방법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하고, 그것들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역지사지가 되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될 문제였다.
왜 갑자기 작년에 그렇게 그동안은 자연스럽게라도 만나지 않던 불사주들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명확히 안다. 나의 문제와 특이점에 대해 브런치에 공개하면서 기존처럼 쉽게 사람을 사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러니까 내 자신감 부족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냈다. 그냥 나를 이해해 주고 좋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람을 만나서 품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한편에 있었다. 정신과의사도, 임상심리학자도 아닌 내가 타인이 어떤 유형인지 재단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타인을 어떤 틀 안에 넣으려는 노력이나 자신감 부족은 연애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되는 것은 그동안의 나의 경험치와 메타인지를 믿는 것, 그리고 잠재의식과 직관을 믿는 것이다. 사랑받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노력으로 높이기는 어렵다. 그냥 자연스럽게 ‘될 일은 되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전에 하던 대로 내 장점과 단점을 온전히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적절한 때에는 속마음도 꺼내서 표현해보려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요즘 들어 실수가 훨씬 더 잦다고 느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는 바보인가 생각한다. 그런데 놀랍지도 않다. ADHD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에 집중력이 부족한 것은 약을 먹을 때나 먹지 않을 때나 같다. 그런데 부주의함은 체감이 되는 것 같다. 청주에서 끊어야 할 버스표를 충주에서 끊는다거나 지하철에서 환승할 때 잘못된 호선으로 간다거나 물건을 오만 장소에 두고 오는 일은 늘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나를 죽이지는 않는다. 조금 더 몸이, 때로는 내 계좌가 고생하면 된다. 너무 심하게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오늘 했던 실수를 다음엔 하지 않게 다음엔 같은 일을 할 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자고 다짐하면 된다. 그런데 약은 서서히 나를 죽일 수 있다. 간이 조금씩 망가지고, 소화기관이 조금씩 기능이 떨어진다. 병원도 꼬박꼬박 가고 약도 매일 챙겨 먹는 노력이 가상한데, 그런 노력은 결코 나를 살리지 않는다.
약을 먹으며 지속해 나가는 내가 싫어하는 일과, 내가 속으로는 정말 안 맞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지속해 나가는 관계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행동에 화가 나서 분출하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 잠시 스스로를 속하게 했던 집단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충동성이 어쩌면 길게 봤을 때 나를 살린다. 억지로 참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안 먹어도 자연스럽게 낫지만, 며칠 째 아프다 보면 이래선 안 되겠다고 결국 병원에 간다. 작년 11월에 그랬다. 감기가 낫기가 무섭게 또 12월에 감기에 걸려서 이번에는 바로 병원에 갔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거의 다 나아가서 약을 세 번째 처방받으러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정신과 약물 처방도 비슷하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지겠지만, 죽고 싶은 마음이 나를 찾아온다면 병원에 가서 항우울제든 ADHD약이든 처방받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이 콜록콜록거려서 이러다 목 다 찢어지는 것 아니야 싶으면 감기약 먹는 것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 침전하는 느낌이 괴롭다면 간단한 약이 도와준다.
괜찮은데도 감기약을 계속 먹지 않는 것처럼 정신과 약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ADHD가 감기처럼 싹 낫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감기는 아무것에도 좋은 것이 없지만, ADHD는 다르다. 용기 있고 창의적이고, 생각의 속도와 실행력이 때론 빨라도 너무 빠르다. 행동이 느려도 너무 느려서 이렇게 게으르게 살다가는 인생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아도 약 없이도 결국 인생 어디론가 가고 있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는데, 그리고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은데, 때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낸다. 때로는 약물에 의존할 용기, 그리고 때로는 바보 같음에 익숙해질 용기, 그리고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계속 세뇌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배짱이 필요하다.
ADHD를 진단받고 약을 먹지 않을 때, 실수를 할까 봐,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미움받을까 봐 두렵다면 스스로를 먼저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다. 타인을 위해 내 몸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분명한 약을 장기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감정기복과 불안이 증폭되는 다른 원인을 먼저 해결해 보자. 그리고나서 약이 필요할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