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T를 위한 변론
(재미를 위해 쓴 만큼 재미를 위해 읽어주시고,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반화의 오류가 들어가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 F를 위한 고지^^)
선언했던 대로 외국인 * 연하남 * F를 만나봤다. 만나본 경험으로 변화된 생각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확실한 T와 F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다.
일단 “한국인 * 연상 * T = 안정감”이다. 내게 안정감이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했을 때 이 3가지의 교집합은 그 안정감을 채워준다.
반대로 말하면 “외국인 * 연하 * F = 불안감”이었다. 이 중에 한 개만 들어가도 사실 불안감에 기여한다. 외국인이라면 문화 차이나 장기적인 정착지에 대한 문제, 연하라면 스스로에 대해 아직 비교적 잘 모른다는 점, 사회적 나이와 아직 갖추지 못한 경제적인 안정감이 불안감에 기여한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이고 이 낯선 곳까지 왔다는 그들의 모험심과 성향, 또는 그들의 직업적 특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연하남이 안정감을 주기 힘든 것은 아직 나도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32살에서 3살만 어려도 아직 20대이고, 32살에 29살을 만나는 것과 38살에 35살을 만나는 것은 큰 차이이다.
하지만, F와 T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F를 한마디로 말하면 공감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남자 중에 F의 비율이 낮다고 하는데 독서모임에 나가면 유독 F가 많다. 멸종 위기의 NF남자들도 독서모임에는 심심찮게 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MBTI를 물어보면 유독 INFP, ENFJ, ENFP가 많다.
술자리에 T들도 있지만 그들은 모임의 주제에 딱 맞는 대화만 열심히 나눈다. 투자 관련된 모임에서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나한테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남자는 역시 T다.
그런데 F는 다르다. 만인의 관심이 에너지의 동력인 두 부류, 인간 리트리버 ENFJ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튀어야 하는 천상 연예인 ENFP들은 만인을 향해 관심을 갈구한다. ENFJ는 특유의 희생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이 재밌어할 주제로 분위기를 띄우고, ENFP들은 남들이 느끼기에 재미는 좀 부족하지만 어쨌든 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자.기.얘.기를 열심히 한다.
INFP는 조용하고 섬세해서 집에서 고양이 쓰다듬으며 혼자 있는 것만 좋아할 것 같지만,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 나를 알아봐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만 있다면 모임에도, 술자리에도 꽤 열심히 참여한다.
어쨌든 NF는 타인의 관심과 공감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내면에 관심이 많아서 애정 어린 공감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인에게도 깊은 공감과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이들에게 연인으로서 만족을 주려면 나 역시 공감해 주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는 내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도 하다.
독서모임에는 NF가 많지만 일반 모임에는 SF가 빠지지 않는다. ESFJ는 MBTI 중에 가장 사교적인 유형이다. 직장에서 만난 ESFJ들은 거의 매주말을 친구들이나 각종 모임 사람들과 보내는 것 같다. 그들은 뭐든지 사람들과 같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만났던 ESFJ 남자들은 만날 때도 공사다망했지만, 나와 헤어지기가 무섭게 그동안 조금이나마 억눌렸던 사회 활동을 늘려나갔다. 외국인 엑스도 인스타그램에 간혹 들어가 보면 들어갈 때마다 팔로워(물론 대부분 여자)가 늘어나있는데, 공부하느라 바빠서 여유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여자친구 한 명으로는 충족이 안 되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ESFJ에게 다양한 친목활동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취미생활을 타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나와 가정에만 일 순위로 충실하기를 바라는 내가 ESFJ를 연인이나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은 서로에게 파멸의 길일뿐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결혼상에 대해 생각했을 때, F의 단점보다는 T의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F는 따뜻한 말로 공감을 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T는 그 하나만 빼면 장점이 많다.
1. F만큼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관심을 요구하지 않아서 굳이 사람들을 만나서 감정을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가 덜하다. 그래서 일부러 천성을 바꾸며 애쓰지 않아도 자신의 목표와 가정에만 충실할 수 있다.
2. T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감정보다는 이성에 기반한 판단을 했을 때 투자에 있어서든, 다른 직업적 판단에 있어서든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다.
3. T의 표현은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다. 내가 외적으로 취향이라거나, 내적인 어떤 특성 때문에 좋다고 했으면, 그 특성들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애에 크고 작은 굴곡이 있어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다. T가 주는 관계에 있어서의 안정감은 F의 모든 장점을 능가한다.
4. T에게는 확신이 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가치관과 판단력은 보다 천천히 변한다. 10년을 만나도 확신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3개월 만에도 결혼하는 커플이 있다. 결혼은 선택이고 결단력이다. 우유부단하고 걱정 많은 SF보다는 확실하고 목표지향적인 NT가 결혼이라는 결단을 더 잘 내린다.
그래서 결혼은 후천적으로 공감의 언어를 학습한 유쾌하고 재미있는 T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