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리의 응원 편지
2023년의 첫 남자이자 두 번째 남친이었던 오빠에게
우리 작년 설연휴에 만나서 고기 굽던 게 엊그제 같은데 새해 첫날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오빠 얼굴을 봤어. 스치듯 봤는데도 낯익은 얼굴에 알아보겠더라고.
요즘 나는 솔로를 올라오는 데로 챙겨보고 있지 않아서 이제야 알았어. 넷플릭스에 부랴부랴 들어가 남자출연자 자기소개 장면에서 오빠 소개 부분을 찾았어. 오빠가 맞더라고. 그리고서 오빠 등장씬과 오빠가 말하는 장면만 드문드문 봤어.
밝고 쾌활한 성격도 잘 드러나고, 우리 처음 만났던 그때보다 표정이 너무 좋아 보여서 마음이 좋았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밀도 있게 쌓아왔던 신뢰가 무색하게 도망치듯 헤어지고 나서는 전화번호도 카톡도 다 지워서 연락 한 번 안 하고 지냈는데, 방송에서 이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
무엇보다 오빠가 좋아 보여서 너무 다행이고 기뻐. 우리 작년에 우연이 겹쳐서 운명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 각자 결혼까지 생각했던 전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힘들던 때잖아. 스스로가 부족한 것 같고, 인생의 운때는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것 같을 때였는데, 밥 먹으면서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순간 정적이 와서 서로의 얼굴을 슬쩍 보면 그늘이 짓게 드리워져 있었지.
그래도 우리 본질이 세상 유쾌한 사람들이라서 2차 가서는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를 스치고 간 폭풍우들을 다 잊고 술과 서로에 취해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했던 것 같아. 방송에서도 오빠의 주최할 수 없는 개그본능이 여과 없이 담겼으면 좋겠다. 오빤 천생 연예인이잖아. 데프콘의 간택을 받아 나중에 프로그램 진행도 같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몰라.
그땐 오빤 나는 솔로 안 본다고 했고, 나는 나는 솔로 너무 좋아한다고 했는데 결국 방송엔 오빠가 먼저(?) 나왔네. 나는 1년간 나를 다 드러내는 글도 너무 많이 썼고 최근에 살도 꽤 쪄서 방송엔 못 나갈 것 같아. 낯가려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친해지면 실제 성격은 세상 밝고 유쾌한 영자라고 하니깐 나보고 20기 영자라고 했잖아. 물론 방송에 영자로 나갈 일은 없겠지. 혹여나 나간다면 진취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그리고 사랑에 적극적인 현숙이라는 이름을 얻겠지.
이번 기수가 비주얼과 피지컬 특집이라는데 피지컬 특집에서도 역시 피지컬은 오빠가 압승이더라. 얼굴 작고 이목구비 뚜렷하니까 화면빨 잘 받더라. 암튼 여러모로 정말 축하해. 자기소개서는 언제 넣었을지, 오디션은 언제 봤을지 궁금하다. 우리가 1년 전쯤 나눴던 대화가 출연 결정에 영향을 줬을지도 궁금해.
오빠가 관종끼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진국인지도 알아서 전 국민이 오빠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아. 프로그램에 확실히 좋은 사람 한 명 나와서 진정성이 올라가는 거니까. 나는 이제 나는 솔로보다 내 실전 연애 고군분투기를 글로 쓰는 게 더 재밌어서 전체 분량을 볼 것 같진 않은데, 오빠 서사는 몰아서 챙겨볼게.
글이 길어졌는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아직도 못했네.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생각인데, “너무 너무 너무 고마워. ” 가장 힘들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을 때, 하늘의 도움인지 오빠를 알게 돼서 잘 헤쳐나갈 수 있었어. 인생그래프 정말 바닥치고 수직상승했어.
글 쓰던 초창기에 내가 브런치에 올리던 글 하나하나 읽고, 피드백해 주고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댓글 남겨줬던 것도 고맙고,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다 품어주고 이해하고 응원해 준 것도 정말 고마워. 나를 있는 그대로 꺼내서 세상에 드러냈을 때 처음 이해받았던 그 기억이 내게 계속 글을 쓰고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 같아. 오빤 정말 큰 사람이야.
우리 만났던 기간은 짧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햇살처럼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 그땐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막상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못 버텼어. 사랑을 주고, 갈구하는데 익숙하던 내가 이렇게 따뜻하게 사랑을 받으니까 그땐 너무 뜨겁게 느껴졌나 봐.
그런데 그땐 그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양분이었어. 그 힘으로 작년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랑과 연애를 했나 봐. 오빤 나는 솔로 촬영하는 동안 동시에 그만큼 여자들을 만나고 알아갔겠지.
나는 솔로에서 솔로로 나오면 dm 보내고 싶어. ㅋㅋ 다시 만나본다고 우리가 연인으로는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닐 것 같지? 내가 기존에 익숙하지 않았던 스타일과 연애 방식이 어려웠던 건지, 어쩌면 너무 다른 겉모습과 겉성격 이면에 나랑 비슷한 명과 암이 있는 인생과 성격이 기시감에 두려웠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연이었는데 내가 너무 철없고 성급하게 끝냈어.
진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관계가 무서웠나 봐. 늘 내가 선택하던 것은 잘 안 풀리는 것마저도 마치 정해진 결말처럼 덜 두려운데, 뭔가 다른 선택은 열린 결말이 두렵잖아. 해피엔딩마저도 나는 두려웠던 것 같아. 어떤 사람하고 잘됐는데 내 인생이 어릴 때 보던 그 인생과 너무 비슷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부모님이나 어린 시절의 내 인생과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에 이젠 외국인을 만나려 하는지도 몰라. 어쩌면 익숙하고 평범한 게 가장 마음 편하고 좋은 것일 텐데도.
사실 사랑이라는 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니깐 그냥 고맙고 특별한 인연 다시 만나서, 친오빠 친동생처럼 우리 처음 만나던 날 갔던 마곡 이자카야에서 노가리 뜯으면서 2023년에 우리 인생이 얼마나 재밌게 풀렸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다.
항상 고마움 간직할게. 응원해 18기 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