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같은 연인을 만나려면
작년 3월에도 헤어졌고 올해 3월에도 헤어졌다. 물론 그 사이, 그전에도 무수히 헤어졌다.
3월에 헤어졌던 사람들은 둘 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작년 3월에 헤어졌던 사람은 그 한 해 만났던 사람들 중 제일 특별했고 좋은 사람이었고, 올해 3월에 헤어졌던 사람도 과분하게 좋은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생각해 보니, 내게 표현을 많이 해줬고 충분히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 줬다. 사랑하는 동안 부지런했고 내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줬다.
내가 좋아서, 또는 적당히 쌍방이어서 용기를 쥐어짜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시작한 연애도 있었지만 이 연애들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엄청 적극적이어서 만났다. 너무 내게 진심인 것 같아서 만났다.
대화도 많이 나눴고, 친구로서, 사람으로서의 신뢰도 충분히 쌓은 후에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성으로 끌려서 사귀어야지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감동하는 포인트가 있어서 만나야지 싶었다.
그렇다. 그들은 감동이었다. 그래서 오래갈 줄 알았다. 나한테 자주 연락하고 넘치게 표현해 주니 이 연애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새해에 만났던 사람에게는 숨이 안 쉬어진다며 공황증세를 호소했고 도망치듯 헤어졌다. 올해 새해에 만났던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때때로 편치 않은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밀어냈더니 도리어 내가 완전히 밀려났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과 틈이 너무 간절했다. 회사일이 연중 2~3월만 유난히 바쁘고 힘든데 마침 그때 만났다. 대화 나누며 그들이 힘도 많이 줬고, 나 역시 연애에도 전혀 소홀하지 않았다.
카톡 오면 바로 답장하고, 전화 오면 받았다. 나도 핸드폰 붙잡고 사는 것은 맞으니까 굳이 뜸 들이진 않았다. 물론 먼저 연락도 하고 틈틈히 이야기도 나눴다.
연애할 때 연락 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자주 연락하고 표현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맞춘다고 맞췄는데, 행복하고 고맙고 충만한 마음 이면에 소진된다는 느낌도 점차 쌓여갔다.
일하는 시간은 어차피 온전히 내 시간이 아니니까 중간중간 카톡으로 대화할 수 있지만, 하루 틈틈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완전히 혼자 쉬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에 있어야 하고 계속해서 이런저런 소음과 간섭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 출근길, 중간중간 쉬는 시간, 점심 먹고 남은 점심시간, 퇴근 시간, 집에 온 후에는 잠시라도 혼자서 고요히 충전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보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자연을 보고 걸으며, 또는 조용히 앉아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언제나 연인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언제든 너무 강렬하거나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았다.
상대방이 표현을 하면 나 역시 표현을 해줘야 하는데, 그 역시 때로는 힘에 부쳤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때로는 나를 덜 사랑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보다 상대방을 더 사랑하는데 열정을 발휘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내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다. 사랑을 주려면 나를 충전하는 시간도 필요한데 하루종일 빈틈없는 연락과 그의 얘기에 집중하느라 내가 완전히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바쁘게 지내다가 충격적인 일들을 겪고 이미 번아웃이 왔을 때 그들을 만났던 것도 같지만, 혼자 있어야 충전할 수 있는 내게 그들의 연애 스타일에 맞추려던 노력 역시 스스로를 더 소진시키는 일이었다.
함께 할 때 편안한 사람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달았다. 봄에 헤어진 두 사람 다 처음 만나던 날은 집 근처에서 만났지만, 롱디인 상태에서 연락만 한동안 주고받다가 마음을 확인하고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 알아간 기간에 비해 실제로 만난 횟수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정말 얼마 안됐다.
그렇게 만나보니 카톡으로 아무리 대화를 많이 나눠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카톡보다는 통화를 많이 해보고 통화보다는 만나서 겪어봐야 함께 할 때 편안하고 휴식처럼 느껴지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렬하고 자극적이고 짜릿한 사랑꾼 연인이 처음에는 좋아 보이지만 오래 만나려면 서로에게 휴식 같은 사람을 연인으로 택해야겠다 싶어졌다. 대화할 때 편안한지, 오래 함께 있어도 편안한지, 연락 패턴이 나를 지치게 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극적인 연애인 줄은 알았는데, 오히려 자극적이어서 새롭고 좋았다. 텐션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신나고 좋을지 궁금했다. 이번에는 고자극 연애를 참고 견뎌보려고 해 봤는데 불편해하는 나를 상대방이 불편해해서 오래 못 만났다.
내가 기존에 오래 잘 만날 수 있었던 유형이 나랑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텐션이 낮은 사람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재미가 없는 게 편안한 것이구나 깨달았다. 연락이 적당히 뜸해서 서로 궁금할 때쯤 연락하고, 표현도 적당히 담백해서 독하리만큼 강렬한 표현에 취하지 않을 정도가 건강에 좋구나 싶었다.
너무 많이 소진된 것 같아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타인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지만, 연애를 굳이 한다면 휴식 같은 연인에게만 나를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