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보지 못한 것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지금의 남자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그에게 기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연인에게 기대고 싶다는 마음을 어느 순간 접었다. 혹여라도 연애가 끝난 후 세상에 완전히 홀로 남겨진 기분을 다시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타인에게 기대려는 마음으로는 행복과 평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인생 목표라든지, 일기 쓰기, 글쓰기, 요가하기, 명상하기, 얕지만 의미 있는 나를 지탱하는 관계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심리적 안전판이 되어주는 나의 계좌 잔고에 분산하여 타인과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의 불안함을 조금씩 지지해 놓고자 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와서 마음이 약간 약해졌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 불안하고 외로웠던 과거의 시간으로 잠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엄마와 동생은 웃고 떠들고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긴장되고 경직된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외부 자극을 온몸으로 느껴 늘 몸이 아프다고 했던 과거의 내게 그들은 남부러울 것 없는 둘도 없는 가족도, 친구도 다 되어주었는데 이제 나는 그들 중 그 누구도 내게 지우지 않는 책임감에 혼자 시달리며 아이 같은 모습은 쏙 들어가고 어른의 모습으로만 존재하려 애쓰게 된다.
남자친구와 밥 먹다가 술 한잔 기울이며, 문득 가족과 잠깐 시간을 보내며 불편했던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를 흘러가듯, 스치듯 했다. 그는 내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꽤나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길래 술 한잔 들어가서 그런가 보다, 내게 이런 이야기까지 할 만큼 내가 편안하구나, 나는 좋은 연인이 되어주고 있구나 괜히 스스로에게 뿌듯한 마음으로 서운함을 덧씌웠다.
서운하다면 서운했는데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이처럼 기대고 싶은데 오히려 어른처럼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다음날 통화를 하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전날 듣지 못했던 위로와 지지, 격려가 듣고 싶었던 것인지 내 얘기를 스쳐가듯 또다시 꺼냈는데, 또다시 그의 얘기로 흘러들어 갔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마음 둘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는 해외에서 공부하며 스트레스 덜 받고 비교적 자유롭게 보냈다고 했다. 집에서 스트레스 받은 것은 있었고 삐뚤어질 수도 있었는데 잘 컸다고 했다. 지금은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지만 그래도 자유분방함이 알게 모르게 흘러나오는 이 사람의 모습이 좋아서 만나는 것이었으면서도 내가 겪어야 했던 삶의 과정과 그가 자라온 환경이 대조되어 더 침전했다.
사실, 그 부분보다는 내 얘기를 안 들어주는구나 싶어 마음이 힘들었다. 기대려고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잠깐 스치듯 아이처럼 기대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이렇게 문득 내 깊은 이야기를 할 때 연인이 “그래도 잘 살아왔다. 대단하다. 잘했다. ”라는 말을 해주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 속상함과 외로움이 마음 한쪽에서 자라나는 한편, 대화의 흐름을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도 하다가 그는 문득 이제 나를 만나서 기댈 수 있다는 마음도 들고 인생을 사는데 용기가 조금 더 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고 나서 인생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롭고 버거운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찾아 틀었다. 노래를 틀어놓고 눈물이 흐르다가 남자친구랑 이야기하자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 얘기를 잘 안 들어주는 것 같다고 느꼈고 가슴에 틈이 생기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평소에도 사람들이 내게 기대려고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어서 누군가 기대려고 하는 것이 너무 싫은데, 그 단어를 들으니까 버거웠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면서도 내가 버겁다는 단어를 쓴 것이 상처라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연인이면 기댈 수 있어야 하고, 가족이 된다면 더 완전히 기대는 관계가 되는 것이고, 그런 관계를 나 역시 갈망하고 지향하면서도, 막상 내 얘기를 잘 안 들어준다고 느꼈는데 나한테 기댈 수 있어서 좋다고 하니까 힘들게 느껴졌다.
기댈 수 있다는 말에 좋은 감정이 60~70% 였는데, 버겁고 힘들다는 마음 30~40%가 나를 압박감에 짓눌리게 만들었다. 내가 평소에 이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던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원래는 그런 사람 원했던 것 아닌가 하며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고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 마음의 안정감에 균열이 생겼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나누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회복했다. 행복한 연인들은 갈등이나 문제가 있어도 잘 대화하고 오히려 돈독해진다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나는 감정이 상했을 때 상처 주는 단어를 선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부모님한테 제대로 기대본 적이 없는데, 그것을 누군가한테 주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정작 인생 목표가 다른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면서도 아직 막상 힘들다고 했다. 그 단어에 거부감이 들고 압박감이 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힘들 때 누가 내게 기대려고 하면 힘든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에 대해서 안다. 내가 이미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정서적으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받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분명 충분히 받았을 것이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와 성장 과정, 그리고 내가 나를 키워온 과정에서 그런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동성이든, 이성이든 나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끌려하고 다가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와 남자 친구를 둘 다 한참 오빠지만 나는 그들을 아이처럼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처럼 사랑한다. 말로는 오빠, 오빠 하고 아이처럼 행동할 때도 있는데, 그들을 품어줄 만큼 내가 성숙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오히려 잘 맞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짜 기대고 싶다는 마음 들게 하고 어른스러운 모습 위주로 보여주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내가 얼마나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꼈는지, 그래서 그 관계들이 실패했는지 잘 알고 있다.
내 앞에서만큼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나의 연인이 나를 위해 더 잘 대화할 수 있도록, 내게 기댈 곳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가 있을 때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인내심과 용기, 너그러움이면 충분하다. 이 관계는 성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