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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n 13. 2024

과거는 우울을, 미래는 불안을 불러와요

현재에 머물 수 있는 삶, 사람

상담을 마치며 선생님이 해 준 말이다. 현재에 머물러 보라고. 계속해서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미래는 어느새 찾아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현재, 현재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내가 걱정하던 미래는 두려운 모습이 아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를 생각하면 우울감이 들고, 미래에 머물면 불안이 생긴다고 했다. 얼마 전 아침에 썼던 기록들이 떠올랐다.




— 2024. 5. 23


그와 이야기하면 대화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 같아서 좋다. 시답지 않은 경험, 우스갯소리도 하고 우리 관계의 모든 과정에서 어떻게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니까 모든 것들이 분명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삶이 흐릿해지고 뿌예지고 생명력이 줄어드는 느낌이 아니라 생생해지고 선명해지고 생명력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우리가 그래서 강하게 연결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지금처럼 미주알고주알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아주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수용해 주는 태도로 대하고 대화해야겠다. 그리고 이런 장점들을 빼먹지 않고 구체적으로 칭찬해 줘야겠다.



— 2024. 5. 29


… 늘 미래에 머물던 내가 현재에 머물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행복하다는 느낌에 충만해진다. 현존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현존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자.





나는 왜 더 이상 우울하거나 불안하지 않아졌나 생각하면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비로소 연애를 하며 처음으로 현재에 머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동안의 연애를 떠올리면 기껐해야 중립이었다. 아니, 대부분의 관계에서 미래에 머물며 불안해했고 그래서 행복지수가 오히려 떨어졌었다.




결혼이 하고 싶다. 그러니까 결혼할 만한 사람을 만나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보자. 그런데 결혼을 생각하니까 이 사람은 이런 점이 마음에 걸리네. 맞는 걸까. 헤어져야 하는데 계속 만나고 있으니 불안하다. 그리고 불행하다.


결혼을 하려면 결혼식을 해야겠지.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부모님이 결혼식을 하는 것을 기대하겠지. 나는 평범하고 관례적인 결혼식이 하기 싫은데. 결혼식 자체도 싫고 결혼식을 위해 내키지 않은 일들을 억지로 하는 것도 싫은데. 대한민국 평균 결혼식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할 생각만 해도 불안하다. 그리고 생각하면 우울하다.




그동안 내 마음이었다.


이번 상담을 마치면서 원래 생각했던 방향의 해결책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선생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이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원래 결혼식이 하기 싫었고 그래서 결혼식을 안 해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단지 결혼식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의 본질적인 면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부모님의 기대나 요구를 거스를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내가 만나는 사람의 생각을 더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고, 형식적인 면보다 본질적인 면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찾고 싶었다.


남자친구랑 대화하면서 처음부터 이 사람은 이런 면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식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대화해 봤는데, 바닷가에서 각자 증인 3명만 참석해서 하는 본질을 우선시하는 결혼식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완전히 편해졌다.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기는 한데, 당장은 먼저 연락하고 싶다거나 그에게 영향받고 싶지 않고 나중에 혹시라도 나의 자녀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인연을 잇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이 이미 다 머릿속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림이 있다며,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고 둘이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 좋아하면서 보내자고 말하는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며,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미래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지금 내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온전히 내 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회사에서 일이 없으면 불안해야 하는데 일이 많으면 불안하다.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본업을 바꾸는 일이 내게 남은 과제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모르고 준비하고 있지 않을 때는 불안했는데, 조금 더 내 본질에 가까운 일을 본업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지금은 불안하지 않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과거 때문에 우울하지도,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하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하고, 그런 일을 하고, 그런 삶을 살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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