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거리

by 해센스

기다리고 있는 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몇 개의 글을 올리고 유료전환을 할 예정이다. 솔직하게 글을 쓰고 나누고 싶은데 약간의 허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모두에게 모호한 글을 나누는 대신 팬들에게 전처럼 좀 더 손에 잡히는 진짜 내 얘기를 나누고 싶다.


올해의 나를 어떻게 정의할까 글을 써보다가 ‘자기기만’이라고 정의하며 긴 글을 써 내려갔다. 오늘은 무조건 글을 끝마쳐야지 하고 쭉 적어 내려 가는데 결국은 끝내지 못했다. 우유부단하고 어떤 명확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스스로를 나 자신을 속이며 보냈다고 표현하려다가 글을 쓰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멈췄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연락하고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 그냥 편하게 혼자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 최대한 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 이런 모든 마음들이 그때그때, 그날그날의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했던 마음이었던지라 내가 한 해를 쭉 자기기만하며 보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 것이다.


누군가와 아예 헤어져 연을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면 장점을 보고 함께해야지 하고 다짐했던 마음을 기만했던 것이고, 갑자기 전날엔 헤어지고 싶었던 사람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머지않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면 분명 헤어지고 싶었던 나를 과연 기만했던 것인지 싶은 것이다.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는 사람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내 인생을 말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최대한 조용히 지냈다. 물론 나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고 나를 조금은 알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라고 해도 같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광대가 되고 소비되는 게 즐거웠었는데 그럴만한 자리도 없었다. 내 인생이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소수의 팬들에게 글로 소비되는 게 더 즐거울 것 같다.


어쨌든 원래 글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깊게 교류하지 못해서 안타깝고 아쉬웠다고 썼다. 그런데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전적으로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내 선택이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 그런 모든 결국에는 지나갈 때로는 더 강렬하고 때로는 잔잔했던 감정들은 감당하려고 했다.


덜 소중하고 덜 중요한 관계들을 쌓아나가기 위해 더 소중하고 더 중요한 관계를 시험대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어보니까 그렇게 됐다. 진짜 나를 드러내야만 누군가와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그냥 나를 드러내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했다.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할 수 있는 몇 명의 친구에게 진짜 내 얘기를 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유료로 전환하면 브런치에서도 조금씩 더 나누고 싶다. 전처럼 무겁지 않고 가볍고 드라이하고 재밌게 글을 쓰고 싶다.

올해를 스스로를 속였던 한 해라고 정의하기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하고 솔직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시간을 들이고 타인에게 거리를 두었던 기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론 내년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에도 즐거운 일들, 나누고 싶은 일들은 분명 있고 그 일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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