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내기 며칠 전 추억의 상자에서 내가 제일 아끼던 편지들과 사진들을 찢었다. 그와의 추억 중 핸드폰으로 찍었던 사진들은 진작에 다 지웠고 남은 거라곤 한 두장의 인화된 사진과 긴 편지 한 장 밖에 없었다. 마음이 힘들고 외로워질 때마다 꺼내서 읽고 또 읽고 정성 들여 쓴 글자체를 유심히 바라보며 힘을 얻던 그 편지.
새로운 연인과 시간과 추억을 쌓고 새 챕터를 열기로 했으니까 이제는 보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시 만날 여지는 1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그 당시 그 마음을 곧 떠날 집을 정리하며 큰 맘먹고 북북 찢어서 버렸다. 그 챕터는 완전히 지우고 이 사람과의 미래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00%의 마음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흘러가는 대로 내린 결정이었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려고 했다.
주말 동안 마르코오빠와 몇몇 사람들과 안동까지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마르코오빠가 1~2년 전부터 가보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한 절이었다.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주말, 마르코오빠와 통화를 하는데 그 절에 사람들과 가기로 했는데 나도 갈 거냐고 물었다. 그때쯤이면 이별했거나 이별 준비를 하고 있을 때고 마음이 힘들 것 같으니 사람들과 멀리까지 템플스테이를 다녀오면 환기도 되고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절에 바로 템플스테이 참가비를 입금했다. 절에 가기 전에는 사이가 좋아졌지만 모처럼 연휴에 계획대로 템플스테이 겸 그쪽 지역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
유교의 고장 안동이어서 그런지 절에서 불교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절밥을 먹고 절에서 하룻밤을 묵어갔지만 유교를 체험하러 온 건지, 불교를 체험하러 온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분명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해서 갔는데, 이 절에서는 다 참가해야 한다고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다 참여하기를 유도했다. 주지스님이 주관한 저녁예불에서는 예불을 하기 전 불당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배웠다. 불상에 등을 보이면 안 된다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오면 왼발부터 디뎌야 하고 왼쪽 문으로 들어오면 오른발부터 디뎌야 하며, 법당에서 나갈 때는 뒷걸음질 쳐서 나가야 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한국의 10대 정원이라는 암자의 한 방에서 큰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있었다. 스님을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좌복 세 개가 놓여있었다. 템플스테이를 주관하는 팀장님은 큰 스님에게 반배를 사고 삼배를 올리라고 하셨다. 할머니집에 가거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올라오시면 하던 절이었다. 산 사람에게 절을 올리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다른 절에서 이렇게 했던가? 역시 안동에서는 불교에서도 유교문화가 짙구나 싶었다. 차담을 하러 왔으니 차를 마실 차례였다. 스님은 뚜껑을 열자 벌레가 출몰하고 밀봉이 되어있지 않아 눅눅하게 하나로 뭉쳐져 말라붙어있던 보이차를 툭 떼더니 터프하게 차를 우렸다.
배는 따뜻하게 머리는 차갑게 하기 위해 차를 마시는 거라고 하셨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와 세균이 득실거리는 차였을지도 모르겠다. 맛이 변할 대로 변한 차를 마시며 큰스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40분가량으로 압축된 모든 잔소리의 총집합이었다. 아아를 즐겨마시고 배를 따뜻하게 하지 않아 머리로 열이 올라가 욱하고 분노조절을 못하는 현대인들의 문제부터, 가족은 함께 살아야 장점이 많은데 1인가구가 늘어서 생기는 문제, 부모님에게는 용돈을 드려야 하고 그래야 아픈 손가락인 자녀가 있으면 부모가 도와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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