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에겐 컬렉션(collection)이 있다
아스퍼거인들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것들을 모은다. 그래서 대부분 자기만의 컬렉션이 있다.
어떤 것을 모으는지는 달라지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모은다는 것이다.
아스피들은 복잡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작은 행복하고 완벽한 세상을 구축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의 이 작은 세상이 온전하면 된다.
사무실 내 자리의 한구석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의 종이컵을 모으고 있다. 아이스음료를 시킬 때 덧대어 주는 카페 로고가 인쇄된 빳빳한 종이컵들을 탁상용 여닫이 서랍 위에 진열해 놨다. 그 종이컵들의 진열 순서나 위치가 달라지면 나의 세상에 미세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랍 중에서 같이 쓰는 칸도 있는데 누군가가 칸을 열면서 종이컵의 위치가 미세하게 변화한다면 눈치채자마자 다시 조정해 놓는다.
커피기업이라는 카페의 컵홀더에 그려진 나무늘보 캐릭터가 귀여워서 그 친구를 오려서 보관하기 시작했다.
아스피는 사람이 아닌 것, 혹은 생명체가 아닌 것에도 감정 이입을 잘한다. 이 캐릭터에게 애착이 생겨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캐릭터 때문에 이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까지 수집광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컬렉터 기질은 여러 곳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여행을 갈 때 마음에 드는 나무나 식물에서 나뭇잎을 한 개씩 가져와서 공책에 붙이고 날짜와 장소를 써놓기도 했다. 어릴 때도 뭔가 몸에서 떨어져 나온 유치(치아)나 그런 것들을 모으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도 내가 먹은 음식들과 읽었던 책들을 각각의 계정에 기록하고 있다. 브런치글들도 차곡차곡 쌓아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아스피로 추정되는 내가 알고 지냈던 친구도 미니언즈를 좋아해서 미니언즈 캐릭터가 있는 물건들을 수집했다. 이왕 물건을 사는 거 귀여우면 좋지 않냐며 캐릭터로 된 슬리퍼, 발매트 등 각종 캐릭터 용품으로 집을 채워놨다.
아스피는 어떤 것들에 몰입하고 집착한다. 몰입하고 집착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모으는 것이기도 하고 모으다 보니 컬렉션이 생겨서 컬렉션에 피스(piece)를 한 개씩 추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스피들이 자주 하는 것, 거의 비슷한 것 사기도 컬렉션을 구축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청바지가 좋으면 청바지를 계속 사서 청바지 컬렉션을 만들고, 부츠가 좋으면 부츠를 계속 사서 부츠 컬렉션을 만드는 것이다.
아스피가 행복할 때는 자기만의 이 컬렉션을 보고 있을 때이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배부른 기분을 느낀다. 사무실에서 카페 종이컵들을 보면 행복하고 집에서 벽 한 켠의 청바지용 수납함에 청바지가 한 칸 한 칸 쌓아 올려진 것을 봤을 때 만족감이 든다.
아스피의 수집광 기질은 물건에 국한하지 않는다. 주식을 시작하고 나서 주식을 백화점처럼 백 종목 가까이 모았던 적이 있다. 돈이 생기면 주식을 사서 한주 한주 늘려나갔다. 아스피는 주식도 잘 모아나갈 수 있어서 적립식 장기투자도 잘할 수 있다.
요즘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온더스펙트럼(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을 찾아나가는 리얼리티쇼)’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이들도 성인이지만 자기만의 컬렉션이 있다. 공룡을 좋아하면 공룡 관련 컬렉션, 인형을 좋아하면 인형 컬렉션, 돌을 좋아하면 돌 컬렉션 등 자기만의 컬렉션이 있고 이것들을 한 쪽에 잘 보이게 진열해 놓는다.
아스피의 컬렉션을 건드리면 아주 큰 문제가 생긴다. 통제불가능하고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이들만의 완벽한 세상에 균열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아스피에게 컬렉션이란 이들을 멀쩡하게 기능하게 하는 정신적 안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