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의 가치

by 파란

김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김포로 가는 초록색 버스를 타면 서울 시내버스가 얼마나 승객을 배려하는지 알 수 있다. 멀미에 혼미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버스로 1시간을 넘게 달린 후 또 아빠 차를 타고 민통선을 넘는다. 차 안이라서 보이지 않겠지만 초소를 지키고 서 있는 군인들에게 반가움을 담아 매번 잊지 않고 경례를 한다. 민통선을 넘으면 드넓은 논과 파란색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고고하게 서 있는 하얀색 두루미가 간간이 보인다.

부모님은 김포에서 조그맣게 농사를 하신다. 처음엔 주말농장으로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아빠가 퇴직하시고 농사 지을 땅을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이 커졌다.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는 또 다른 살림살이였다. 컨테이너를 갖다놓으니 쉴 수 있는 평상을 들였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물 배관을 설치했다. 농사에 꼭 필요한 용수와 농기계를 이웃집에서 매번 빌려 쓸 수 없는 노릇이니 인부를 불러 관정을 파고 건조기를 들였다. 이제 겉으로 보면 꽤 그럴싸한 집 한 채의 외관이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아파트에서 화분으로나마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로망을 마음껏 실현하셨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심은 메리골드, 백일홍, 접시꽃, 코스모스, 양귀비, 수국, 작약 등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은 색채 있는 울타리 역할을 대신한다. 꽃을 키우면 죽이기나 하는 내가 처음에 멋모르고 잔디 위로 지나다니다가 잔소리 폭격을 받은 뒤로는 조심하며 넘어다닌다. 시기에 맞춰 꽃씨를 뿌린 꽃들이 개화하면 그 화려한 자태에 꿀벌이 날아들고 동네 할머니들은 지나다닐 때마다 예쁘다고 참견하신다.

밭 너머엔 산이기 때문에 동물들과도 눈인사를 할 수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고라니가 떡하니 서 있었다. 다리만 몇번 겅중겅중 움직인 것 같았는데 논 사이로 어느새 사라졌다. 또 엄마는 농사일을 하다가 만난 두더지를 보고 얼떨결에 들고있는 삽으로 몇 번을 퍽퍽 내려쳐서 죽였단다. 불쌍한데 살려주지 그랬냐 하는 내 말에 두더지가 땅속을 얼마나 들쑤시고 다니는데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다. 엄마의 단호한 말이 너무 웃기고 두더지가 안쓰러웠다. 밭 사이로 기어다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애벌레들은 나비가 되기 전 열매와 잎들을 모조리 갉아먹기 때문에 꼬박꼬박 없애야 한다. 엄마는 기도할 때마다 농사를 하면서 너무 많은 생명을 죽인다며 하느님께 고백 성사하신다. 말그대로 웃픈 상황이다.

문을 잠그고 볼일을 볼 수 있게 만든 재래식 화장실은 밑으로 떨어지는 오물을 그대로 받아 비료로 만든다. 도시에선 나에게서 파생된 많은 쓰레기와 내 흔적들의 종착지를 모른다. 버려버리면 그뿐이다. 쓰레기 더미를 외국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우리나라로 되돌아왔다는 기사나 북태평양 플라스틱 바다에 한글이 적힌 플라스틱 통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다큐 내용의 충격은 잠시뿐이다. 일상을 살다 보면 내 일이 아니게 된다. 이곳에선 하나의 물건도 허투루 쓰이는 것이 없고 땅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음식물 쓰레기도 옥수숫대와 완두콩의 껍질도 땅에 다시 묻는다. 땅에서 왔던 것들은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

식재료 중 채소와 구황작물은 자급자족한 지 꽤 되었다. 고기를 구워 먹기 전 밭에서 상추와 양파, 대파를 바로 뽑아서 양껏 먹을 수 있다. 풍족하다 못해 식복을 타고난 것 같다. 씨를 뿌리기 전 먹고 싶은 야채를 부모님께 미리 주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이와 참외, 쑥갓, 땅콩, 마늘, 애호박, 가지, 토마토, 깻잎 등 상자 한 가득 채워지는 다양한 채소들로 어떤 요리를 해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행복하고 힘든 결정이다.

특히 11월 중순에는 우리 가족에겐 꽤나 중요한 행사를 치른다. 직접 키운 배추와 고추로 김장하는 우리 집은 중국산 고춧가루와 배추의 향연인 식당 김치에서 안심이다. 아빠는 김치 반찬 하나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김치 귀신이다. 또 밖에서 먹는 김치 불신자이며 집에서 만든 김장 김치 신봉자이다. 나는 허리와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리고 아픈 부모님을 도와 김장에 말없이 동참한다.

김치 종류는 배추김치, 파김치, 무청김치, 동치미, 백김치, 순무김치 등 다양하다. 배추를 소금으로 절인 후 하루종일 마늘,쪽파,대파,갓, 무를 씻고 다듬는 지옥에 빠진다. 나는 힘쓰는 일을 다하는 아빠와 종종걸음 하며 진두지휘하는 엄마에게 배려를 받아 가만히 앉아 재료를 다듬는 쉬운 일만 한다. 하지만 허리가 뻐근하고 눈이 아프고 좀이 쑤신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김장재료들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지만 애써 삼켜본다. 언젠가 김장이 몇 십 년 뒤의 내 일이 될 것임을 직감한다.

요즘은 제철인 산딸기를 따러 일요일마다 김포에 간다. 비탈진 언덕에 산딸기 나무의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히 자리를 잡는다. 빨갛지만 투명한 빛의 아직 여물지 않은 산딸기 사이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검은 빛의 산딸기가 보인다. 살살 손에 쥐고 살짝 돌리면 쏙 빠지는 산딸기를 바구니에 넣다 보면 어느 새 소복이 쌓인다. 이렇게 공들여 딴 예쁘고 온전한 산딸기는 급속으로 얼려 1kg에 만 원씩 알음알음 연락해오는 지인들에게 판다. 난 부모님의 노동의 가치를 너무 후려친 가격이라며 불평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찾아주고 구매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우신 것 같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고 한다. 한낮 땡볕에도 엄마는 잡초를 뽑고 아빠는 약을 친다. 옆에서 부모님의 수고를 지켜봐왔던 난 앞으로 절대 농사는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부모님은 왜 농사꾼에 '꾼'이 붙는지 알겠다고 하셨다. 그만큼 그 어떤 일보다 몸과 마음이 갈리고 극적인 일이 농사일인 것이다.

농사는 항상 성공적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재작년 김장엔 고추가 탄저병에 걸려 싹 다 죽어버렸다. 마을 안에서는 탄저병에 걸린 고추 얘기로 괴담과 소문이 무성했다. 결국 태양초를 구하느라 부모님은 발품을 팔며 뛰어다니셨다. 작년엔 결과물이 알찼지만 올해는 시들시들한 것이 농사다. 그 원인을 찾아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고 유튜브에서 힌트를 얻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의 몫이다.

농사 짓는 사람의 땀과 노력에도 수많은 변인인 자연의 조건들로 인해 변화무쌍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몇 날 며칠 아무리 열성을 다해 밭을 가꾸어도 비가 오지 않거나 너무 많이 오면 작물은 시들해지다가 죽어버린다. 농부의 속타는 마음을 사랑에 애타는 마음과 비견할 수 있다 생각한다.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음을 믿었던 조상들의 운명론적 가치관이 농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마트 안 상품들의 가격표는 단순한 숫자로 다가온다. 플라스틱과 비닐, 스티로폼으로 밀봉되어 있는 작물들은 마트까지 오게 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과정, 작물을 이만큼 키워낸 사람들의 땀방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 그 과정 안엔 새벽의 동틀 때부터 바삐 움직이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가 담겨 있건만 도시의 소비자들에겐 생기 없이 진열되어 있는 매대의 상품들로 받아들여진다.

무엇이든 내 일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전엔 편식을 하는 내게 농사 지은 농부들께 감사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식상하게 들렸다면 이젠 식복을 타고난 내가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땀으로 얼룩진 작물들이 상해서 버리기라도 해야될 때면 죄스러운 마음부터 든다. 그 수고를 나라도 알아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고생을 한 치도 낭비하고 버릴 수 없다는 의무감이 섞여 있다.

작물의 가치는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단순한 숫자 너머엔 땅 속에서부터 움튼 씨의 파노라마 영상 속 켜켜이 쌓인 시간과 농부의 숨결과 손길이 있다. 그래서 하나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자연 속 잠깐 이 땅을 빌려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겸양의 낮은 자세로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시인 이재무의 시 <딸기>가 더 와닿는 요즘이다.


딸기 -​ 이재무

오십 리 길 짐차에 실려왔어유
멀미도 가시기 전에
낯선 거리 쏴댕기면서
지 몸 살 사람 찾고 있지유
목마름은 이냥저냥 견딜 수 있슈
헌디, 볼기짝 쥐어뜯으며
살결이 거칠다느니
단맛이 무르다느니 허진 말어유
지 몸이 그냥 지 몸인가유
이만한 몸띵이 하나 살리기 위해서도
하느님 손 농부 손 고루 탔어유
그러니께 지폐 한 장으루다
우리 식구 사돈에 팔촌까지 두루 사 가시는 선상님들
몸값이나 후하게 쳐주셔야겄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