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만과 편견 1/4

by 파란

난 이란성 쌍둥이로, 나이가 같은 남동생이 있다. 서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는 걸 싫어하지만 어딘가 닮았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심심찮게 들어왔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사는 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동생은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평행선에 있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의 편견이자 오만임을 고백한다. 이는 내 삶에서 우연히 맞닥뜨리는 동생을 닮은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불쑥불쑥 건드린다.

엄마는 아이를 너무 원하셨지만 각고의 노력을 다해도 한동안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길가에 유모차를 보면 납치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간절함을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7년 만에 시험관으로 어렵게 가진 자식이니 힘들게 낳은 만큼 불타는 교육열과 잘 키워내겠다는 뜻은 그 누구보다 확고했다. 문제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시행착오를 답인 양 밀어부쳤다는 데 있다.

어릴 때 엄마는 많이 엄격하셨다. 한국의 부모가 대부분 그렇듯 사랑의 이름, 매로 다스렸고 건강과 학업에 방해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금지였다. 그럼에도 나와 동생은 힘을 합쳐 일탈을 감행했다. 엄마가 외출하시면 몰래 컴퓨터를 켜고 메이플스토리 게임을 하거나 아이돌 뮤직비디오와 만화 애니매이션을 봤다. 우린 죽이 척척 맞는 조력자였다. 암묵적으로 각자 역할을 나눠 수행했는데 도어락 소리가 들리기 직전 발소리가 나자마자 한 명은 망을 보다가 재빨리 전원을 껐고 한 명은 엄마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말을 걸며 마중을 나갔다. 또 엄마는 집에 돌아오시면 공부 말고 딴짓을 했는지 티비와 컴퓨터의 본체에 잔열을 확인하셨다. 이를 식히기 위해 차가운 물에 수건을 빨아 본체의 뒤쪽에 대고 있기도 했다.

또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때 우연히 알게 된 명곡 윤도현의 '사랑했나봐'에 꽂혀 동생과 난 홈플러스에서 앨범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도 열심히 변호했지만 엄마는 공부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모든 설득이 무용함을 알고 그때의 난 절망했었다.

이외에도 우리 집에선 탄산음료나 주스, 과자는 일체 금지였다. 군것질 중 딱 하나 허용되었던 초코파이는 아직도 싫어한다. 하지만 중학생인 우리를 막을 순 없었다. 학교 앞에 매일 오는 포장마차에서 컵볶이, 피카츄 돈까스, 슬러쉬, 각종 튀김을 먹었다. 또 문방구에서 100원짜리 군것질거리를 사서 모조리 털어 넣은 후 입을 싹 닦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척 집에 들어갔다.

엄마의 고지식한 교육관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려는 굳은 의지와 신념,사랑이 바탕임을 지금은 이해한다. 엄마 밑에서 자란 내가 예의를 차릴 줄 알고, 정도(正道)와 일탈을 구분할 줄 아는, 남에게 욕먹지 않는 어른으로 큰 것에 감사하다. 그러나 지난한 기억을 돌이켜봤을 때, 교육에서 전제되어야 함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절제가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무조건적인 금지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름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