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만과 편견 2/4

by 파란

엄마는 우리가 쌍둥이기에 모든 것을 평등하게 같이 시키고 서로 도우며 지내기를 바라셨다. 실제로 엄마의 입김으로 초등학교 때까진 계속 같은 반이었다. 다양한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한 구몬, 피아노, 미술, 논술, 기타 다른 과목 학원도 모두 같이 다녔다.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같은 나이더라도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4살 조숙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난 엄마의 열정 넘치는 교육열에 힘입어 각종 대회에 나가 상장을 받고 동생보다 빠르게 치고 나갔다. 하지만 동생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며 산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엄마의 신경의 추는 동생에게 점점 기울어졌다. 옆에 끼고 새벽까지 공부를 가르치셨고 더 엄하게 대하셨으며 정신의 기강을 다잡기 위해 국토대장정, 청소년 수련원에 보내셨다.

나는 버틸 만했지만 동생에겐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동생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가출을 감행했고 엄마는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우리 가족의 안정된 삶과 자식의 교육에만 매달리는 엄마는 동생의 가출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누구보다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시는 분이다. 정해진 진 길 위에서 한눈 팔지 않고 올곧은 인생을 살아오셨다.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동생의 일탈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생은 가출 후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이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해서 첫 가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피씨방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기에 동생은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한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집에 가기 싫어서 친구도 없이 혼자 놀이터에 앉아 있었을 동생을 생각하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고 가슴 한 켠이 짠하다.

동생에게 왜 그랬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가족 중에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다그치기 바빴고 난 대부분 옆에 조용히 있었다. 부모님은 동생이 엄마, 아빠의 말을 듣지 않으니 누나가 얘기를 해야 한다고 혼내셨다. 1분 차이어도 누나는 누나였다. 누나가 도무지 동생과 대화를 하지 않고 관심도 없으니 동생이 더 엇나간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보면 나는 방관자가 맞았다. 난 동생의 삶에, 말이든 행동이든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이 없다. 학교에 가면 집 나간 동생이 어디 갔냐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물어왔지만 난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내가 뭘 해야 하지 몰랐고, 무섭고 두려웠다.

문제는 가출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비행의 강도와 빈도는 더 심해졌다. 뒷수습을 하느라 부모님은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악전고투를 이어가셨다. 동생의 일탈은 하나의 글에 모두 적지 못할 정도이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부모님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과 하루하루 늘어가는 깊게 패인 주름살, 끝까지 동생을 계도하려는 피눈물 섞인 노력을. 덤으로 동생에게 전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쓴다, 너가 가족이냐며 내게 쏟아지던 비난과 화풀이는 덤이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난 아무도 모르게 학교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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