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동생은 병원에서 ADHD를 진단받고 약과 상담을 병행하다가 그만둔 상태였다. 동생의 계속된 비행으로 집 분위기는 언제나 살벌했다. 나는 초토화된 전장이나 다름없던 집에 동생과 같은 마음으로, 정말 들어가기 싫었다. 하지만 나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엔 줄초상이 날 게 뻔했다.
야자를 끝내고 11시 넘어 집에 들어가면 온몸에 스며드는 소름 끼치는 고요함과 집 안 가득 잠식해버린 어둠이 날 집어삼켰다. 엄마의 신발은 아침에 보았던 위치와 각도 그대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매일 똑같았다. 태아처럼 잔뜩 웅크린 엄마의 몸뚱어리가 안방문 틈새로 보였다. 하루의 절반이나 넘는 시간을 침대에서 죽은 듯이 썩은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엄마.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내게 침대 위 엄마는 검은 솜뭉치였다. 집에 오지 않는 동생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무슨 일이라도 냈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한시도 편하지 않은 마음에 시달리다가 제풀에 지쳐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순간들이 뭉쳐있었다. 검은 솜뭉치는 거대하게 부풀어 내 입속을 메워버리고 기도 끝까지 차올랐다.
동생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난 누나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상담해주거나 손을 잡고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행동을 한 적도 없다. 그러니 방관자인 내가 힘들어할 자격도 없음을 안다. 그래도, 그래도 털어놓자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으로 동생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 꼽을 수 있다. 여기엔 ‘왜 동생은 그런 행동들을 해서 엄마를 가슴 아프게 할까’하는 원망도 섞여 있다. 힘들어도 꾹 참고 버텨내야 하는 것, 하기 싫어도 해내면 언젠가 보상이 주어지는 것,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고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들이 있다. 동생에겐 이 선이 모호했고, 지키고 행동하기를 많이 어려워했다.
정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동생의 입장에선 힘들 수도 있음을 머리론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지, 싶으면서도 ‘나도 싫은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지켜야 하고 그냥 하는 거야. 근데 넌 왜 그래? 제발 정신 좀 차려.’라는 꼰대 같은 말로 일침을 날리고 싶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죽기 전이나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가 내 생각의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본인이 잘났고,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물며 동네 양아치도, 깡패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가치 있고 긍정적인 존재로 있게 하기 위한 최소의 선이라 생각한다. 이조차 없다면 죽음이라는 답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편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옆에서 아무리 맞는 소리를 해도 행동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본인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만 남고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낀다면, 이것이 행동이 변화할 첫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