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셋 Nov 16. 2019

"손님, 바닐라 라떼 시키셨지만 아메리카노 드세요."

어른이 된다는 것.

 "손님,  바닐라 라떼 시키셨지만 아메리카노 드세요." 실제로 듣게 된다면 황당해서 컴플레인을 걸어야 하는 소리겠지만, 난 내 인생에서 자유가 바닐라 라떼인줄 알고 시켰지만 아메리카노가 나왔는데도 컴플레인도 못 걸고 마셔야 했다.  


 난 대학교만 들어가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세상에, 술도 마실 수 있고 뭐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수업도 , 밥 메뉴도, 자유 시간도.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새로웠다.


 맨날 급식만 먹었던 시절에서 벗어나서 먹는 진정한 '바깥 음식'은 어린 시절에 처음 먹어본 페레로로쉐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충격적 일정도로 달콤했다. 곱창, 돈가스, 핫도그 등 다 급식보다 맛있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디저트였다.


 특히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학교 앞에는 2000원에 '바닐라 라떼'를 팔았었는데, 그게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수업 가기 전에 한 잔, 집 갈 때 한 잔 씩 사 먹었다. 거기에 빙수에 케이크까지. 입학한 지 몇 달새에, 살이 한 5kg가량 쪄서 그걸 빼느라 운동에도 돈을 꽤나 썼었다.


내게 처음 제대로 주어진 자유란 그 맛있었던 바닐라 라떼 같은 것이었다. 그저 문제집을 사고, 학원 끝나고 간간히 사 먹던 컵 떡볶이 같은 거에서 벗어나 주어진 용돈 범위 내에서 사 먹었던 그 2000원짜리 바닐라 라떼 같은 것 말이다.


 처음에는 그 2000원을 내고 바닐라 라떼를 사 먹을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디저트 같은 거에 2000원이나 써도 되나?'와 같은 생각 말이다. 사실 하루에 두 잔씩 먹었으니 4000원이나 쓰는 격이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불안함도 잠시 그것은 너무 달았다.


 그게 내가 처음 맛본 성인으로 주어지는 자유의 맛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짜야했던 수강신청도, 동아리도 다 불안했지만 그건 짧았고 그 맛은 달콤했다.


 초콜릿 음료만큼 달기만 하기에는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아메리카노처럼 쓰지만은 않은,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그러나, 그 달콤했던 자유는 2년 뒤에 내 진로의 선택을 기점으로 5kg의 지방 같은 무겁기만 한 것으로 남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가 아니라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난 그 말에 지금은 동감한다.


 고길동이 성인으로 책임져야 하는 그 삶의 무게가 이제는 '그래도 자유는 바닐라 라떼만큼 달콤한 걸!'하고 넘겨버리기에는 저울추가 '책임'에 너무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걸 더 상세히 풀어보자면 그런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삶의 무게가 무거움을 알아버리는 것.


  난 내 전공이 너무 좋았다. 밤을 새우던 것도 힘들었지만, 알아가는 것이 더 즐거웠고 달콤했다. 심지어 학점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전공으로 밥 벌어먹는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때 선택한 그 길에서 내 자유는 바닐라 라떼에서 아메리카노로 바뀔 그 위대한 시작을 하고 있었다.




  난 미래에 대해 그래도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짧았다. 내가 천부적으로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을 해봐라. 그 과가 좋아서 들어오게 되었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다니! 그래서 앞 뒤 길게 안재고 시험의 판에 뛰어들었다.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못해낼 게 없다는 생각으로 파워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고, 어렸으며, 뭐 못하면 '한번 더 도전하면 된다!'와 같은 그런 생각들로 난 원래 준비하려던 공무원 학원을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그 다른 시험판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다.  내가 택한 길이 잘 다져진 하나뿐인 도로처럼 느껴졌으니깐.  그래서, 그때까지 내게 자유란 달콤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선택의 무게가 어떨지 몰랐다.


 첫해에는 두 달 공부한 것 치고는 딱 평균 점수가 나왔었다. 상관없었다.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도 안 했다. 두 달 공부했는데 이 정도면 더 높은 곳을 바라봐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때가 내 바닐라 라떼가 아메리카노로 바뀌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내 점수로는 택도 없던 높은 곳에 딱 하나 지원하고 면접에서 낙방했던 그 해에 아직 내 자유는 조금 덜 단 바닐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달달했다. '뭐 제대로 준비한 거 아니었잖아~'와 같은 합리화가 가능했으니깐.


 그다음 해에는 학원 같은 것 필요 없다면서 스터디를 꾸려서 공부를 시작했다. 뭐 나름 열심히 했었다. 이제 학교 수업을 들을 일도 없었고, 거의 하루의 모두를 시험에 투자했다. 근데 점수는 첫해에 봤던 것보다 더 떨어져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좌절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는 있었다. 따져보면 제대로 준비한지는 이번 1년이 처음이었으니깐, 내년에 더 열심히 도전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몇 달간 다독여서 그다음 해에 다시 도전을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도전에서 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내 모든 걸 투자한 1년이었고, 내 직업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던 그 결과의 성적표가 내 노력을 비웃었다. 아니, 노력이라는 게 매번 보답을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결과는 나와야 하지 않는가. 근데, 그 해의 내 노력의 성적표는 반의 반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 1년의 노력이 1/4 토막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내 자유는 한순간에 아메리카노, 아니 에스프레소가 되었다. 밤마다 남몰래 울었다. 고작 시험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결과가 너무 처참했다. 내 자존감이 바닥 끝까지 내려졌다.




 그렇게 노력이 1/4도 안 되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우울해하는 그런 나 자체가 싫었다. 뭘 잘했다고 우울해하는지, 그까짓 시험이 일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웠고 낮에는 웃다가도 밤마다 울곤 했다.  과거의 과거로 돌아가다 보니, 일생을 잘 못 선택한 것 같았다. 전공을 선택한 과거의 내가 싫어졌다. 내 길은 이 길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스펙도, 그 흔한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달려왔었다. 주변에 취업을 대비하는 동기들을 보며 불안해졌지만, 내가 가진 역량과 열정을 믿고 버텼다. 그래서 충분할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난 취직이라는 게, 내 역량과 꿈과 가치관을 다 때려 부어서 하나의 정화되는 결과로 나오는 여과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으리라라고 장담했었다. 남들처럼 세세한 조약돌로 여과기에 넣지 않아도, 난 열정이 있고 그 꿈을 사랑했으니 남들보다 더 공부하는 그 길에 서있다 생각했다.


 내 가치가 세세한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도 다소 투박하지만 다소 허술한 거름망을 거쳐도 정제되어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했었으니깐. 3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다짐으로 노력했으니깐.


 하지만 난 내 꿈을 이루기에는 , 내 노력을 보답받기에는 부족했다. 애초부터 잘 다듬어진 정제된 물 같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세하게 내 가치가 결과로 나올 만큼 조약돌 같은 역량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걸 노력이라는 명목 하에 잘 거르고 걸러서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실패했었다. 이걸 인정하기까지 참 힘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것 같았다.


 내가 그리 엄청나게 대단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 말이다. 내가 엄청나게 노력해도 걸러지는 건 고작 넣은 것에서 양만 토막 난 몇 방울의 물 같은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힘들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깨달으니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이 변변치 않은 어른이라는 걸 인정하니깐, 내가 가진 현실과 나아가야 하는 길 그 사이가 명확해졌다. 이건 나중에 더 얘기해야겠지만, 난 이 실패 속에서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 바닐라 라떼 같은 자유와 그로 인해 생기는 순전히 나의 몫인 결과물에서 그 자유가 우유와 시럽을 타서 달아 보였던 것일 뿐 사실은 달지 않은 아메리카노 같은 것인 걸 깨달아 버린 그 순간에 난 어른이 되었다. 


 내가 달달하다고 느껴서 시킨 바닐라 라떼지만, 아메리카노가 나와도 원래 내가 아메리카노를 시킨 것임을 깨닫고 겸허히 받아드리게 되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어른이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겪는 실패와 어려운 인간관계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어려움에서 한 나름의 생각 끝을 적어나갈 것이다.


" 내가 실패했는데, 지금은 다 괜찮아졌어. 그러니깐 너도 나도 나중에는 다 괜찮을 거야." 같은 끝이 아니라 여전히 힘들고 불안한 한 사람의 생각의 끝에서 아주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수없이 밤마다 울었던 그 밤들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나도 그랬는데, 뭐 지금 딱히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와 같은 것이었으니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