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바라보는 당신은 어떤가요.
저녁노을
난 노을이 좋다. 특히, 저녁노을은 특히 아름다워서 좋아한다.
노을은 어떤 장소에서 보건, 누구랑 보건 그 어떤 풍경이라도 아름답다.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사이로 빼꼼 비추어지는 노을도,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맨해튼에서 본 노을도, 고즈넉한 산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때로는 드넓은 노을도, 심지어는 지저분한 것들이 돌아다니는 장소에서 보는 노을도 아름답다. 하물며 별 한점 없어도 아름답다.
그 어떤 장소에 가서 보던 노을은 아름다워서 난, 노을을 좋아한다. 노을을 보면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이유는 흔히 우리가 노을을 인생과 비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은 다들 아름답다.' '그 누구의 인생이라도 한 편의 영화 같으니.'와 같은 말들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노을이 그 어떤 장소에서, 그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아름다운 것처럼 누구의 인생이라도 아름답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바닷가가 찰랑거리는 노을도, 추운 겨울도, 화려한 노을도 그저 지는 해만 있으면 아름답듯이,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게 풍족하더라고, 춥더라도, 그 어떤 누구보다 화려하더라도 똑같이 아름다울 것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어떤 인생이건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는데 왜 때로는 너무 공허하게 느껴질까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노을을, 그 인생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달린 것 같았다.
20대 초반에는 나는 참 무모했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어떤 노을을 바라볼지라도 아름다웠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니깐. 오늘 하루 잘 보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 어떤 노을이라도 아름다웠다.
어느 날 지인과 같이 걸어가다가 노을을 본 적이 있다. 그 지인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노을을 볼 때 너무 아름다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도 가끔씩 앓아왔고, 실패했던 그 시절에 느끼던 감정이었다.
그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마음이 죽을 것 같으면 그 인생이라는 게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세상에서 그냥 내가 이대로 사라져 버리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그 노을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마음이 중요했던 것이다. '인생은 다 아름답다. 그러니, 그저 묵묵히 견뎌내라.'와 같은 말들이 진부하고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 사람들이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찾고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치는 이유는 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이 맞지 않으면 퇴사를 결심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꿈을 찾고, 때로는 길을 포기하는 것은 다 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인 크리에이터가 성공하는 요즘 세상도 그 때문이 아닐까.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해하고 자신이 행복한 삶을 개척하는 것이 나는 정말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눈에 보이는 노을의 풍경을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내 인생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쌓고 누가 봐도 번듯한 직장에 있으면 그 노을은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름다울지 몰라도 정작 그 노을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힘들면 그저 아름다워도 슬퍼지듯이 노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자신을 잘 알고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 멋있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서 세계여행을 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퇴사하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청춘(靑春)
청춘의 사전적 정의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시기'라고 되어 있지만, 백세 시대를 사는 요즘에는 맞지 않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노을이라면, 노을은 늘 진하고 찬란하게 아름답듯이 그 어떤 시절의 노을도 푸르고 찬란하다.
그러니, 1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2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30~50대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세대들도 다 靑春인 것이다. 노을이 다 똑같이 찬란하듯이 말이다.
그 어떤 청춘을 살아가더라도 노을은 아름답다. 다만, 그 노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요한 것 같다. 내 마음에 따라 그 노을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지 아름다워서 슬퍼지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이 좋다. 그 글의 쓰는 사람의 靑春의 한 자락에 내가 옆에 잠시 앉아서 그 사람의 노을을 같이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면, 난 그럴싸한 인생의 노을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했을 뿐, 정작 내 마음을 살필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다. 원만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커가면서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에 상처 받았던 날들도, 마음이 힘들 때도, 실패를 겪었을 때에도 그저 그 상처를 들여다보고 나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그냥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고, 겉으로는 늘 웃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무기력증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정작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집중하기 어렵고 끝없이 후회하면서 지낼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나를 들여다보면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 그 따뜻함과 진정성에 위로받기도 하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
모두의 노을은 다 아름답다. 모두의 삶은 어떤 것이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노을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도 괜찮기를 바란다. 새로운 선택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 때로는 단조로운 삶을 살더라도 아름다우니 그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렇게 느끼기를 바란다.
나도 요새 내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지는 부분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노을이 다 아름답다는 것은 사실일 테니,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괜찮기 위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예전과는 달리, 남이 가끔은 실수로 나쁜 말을 하더라도 실수겠거니, 원래 마음은 그게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유연함도 갖추게 된다. 상대의 인생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니 약간의 실수로 매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물론, 쓰레기가 돌아다니는 노을도 운치가 있다고 해서, 그 쓰레기가 갱생 불가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라면 정작 그 인생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우니, 그런 타인은 존중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
모두의 인생의 노을은 아름답다. 그래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장은 타인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괜찮은 것인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아름답다고 해도 내 마음이 괜찮아야 그 세상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도 타인의 평가도 세상의 잣대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가장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청춘'을 살아가는 나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끝으로, 당신의 노을은 다 아름다우니, 그러니 그 노을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도 괜찮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