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셋 Dec 03. 2019

 포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하지만 포기해서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다.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며칠 전에 거의 매일 가는 목욕탕에서 자주 보는 분이 먼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서로 어색한 공기를 채우다 보니 어쩌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분은 자기가 지금은 쉬고 있는데, 전에는 호텔 관련 일을 했다고 말을 하셨다.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교수님 같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자신이 머리가 좋았으면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었겠다면서 웃고는 나 보고는 열심히 도전하라고 하셨다. 자기는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몇 번을 해도 안된 적이 있었다고.


 정말 공감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맞아요, 해도 안 되는  있더라고요." 그러니 아직 젊으니 더 도전해보라는 훈훈한 얘기로 끝이 났지만, 거기에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저 그 길 거의 포기했어요.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열심히 산다는 것


 난 열심히 살려고 참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사실은 방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시작은 잘해도 끝을 잘 못 맺는 사람이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은 해내려고 하는 '노력파'였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겼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하고 싶은 것도 참고, 노는 것도 참고, 때로는 놀 때도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지 못했다.


 며칠 전에 친구가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자기가 인생을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깐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오후 수업이어도 딱히 계획이 없음에도 새벽같이 집을 나서던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산 이유를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더라고.



 거기에 정말 큰 공감이 되었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나는 참 놀 줄 모르고 놀려고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노래방도 성인이 돼서야 가봤고(음치여서 더 그렇기는 하지만), 카페도 성인이 돼서야 가봤다. 뭐, 그 시절에야 공부만 하는 게 착한 학생이라는 인식이 더 커서 그랬지만. 난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기 싫어도 좋아도 그저 선택한 길을 그냥 열심히 살았다.   시작한 일이 있으면 거기에 매였다. 열심히 사는 사이에 여유를 넣지도 못했다. 


열심히 살아도, 다 보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은데, 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덜’ 열심히 살았던 때가 더 행복했고,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았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공부했던 때가 더 결과가 좋았고 결과가 좋았으니 자신감이 생겼고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 이 길이 아니면 안 되는데.’ ‘나 1년 보낸 거 다 허사가 되는 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열심히 살아서 도전했을 때는 오히려 잘 모든 길이 힘들었다. 이게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리니 딱히 나아지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못하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기만 했다. 여유는 사치라고 생각했고 그게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전보다 간절하게 열심히 살았고, 그것이 어쩌면 그것이  시야를 가렸을지 몰라도, 이거 하나는 명백했다.  내가 선택한 길에 재능이 없었다.


미련을 포기한다는 것


  길었던 3년간의 수험생활을 마친 잔해를 얼마 전에 방청소를 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먼지가 굴러다녀서 비염이 심해졌다. 이유가 뭔가 해서 봤더니 쌓아두고 쌓아둔 수험 책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청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남겨두고 남겨두어서 그 미련들이 모여서 먼지들만 생산해내고 있었다. 나중에 이걸 버리면 후회로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면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커다란 쇼핑백의 6개나 되는 양을 갖다 버렸다.



 포기한다는 것이 그런  같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재능이 없을  있다는 . 그게  때문이여도, 그게 실력이어도,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택한 길이 정답이 아닐  있다는 .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다.


 언젠가는 내가 이 꿈과 길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미련이 되어서 책을 버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말이다. 미련이 후회가 되어서  나중에 다시 도전하더라도 현재 다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면 당장은 그 미련을 버려버리는 것이 맞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그 미련 같은 책들을 시원섭섭해도 버릴 수 있던 이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고.


  포기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을 몰랐었다. 미련이 나를 자꾸 잡아끌고, 새로운 길을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포기한 것이 후회가 될까  미적지근하게 살았다. 근데, 내가 돌아서고 새로 선택한 길이 오히려 행복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친구가 강아지를 키우며 한 말이 있었다. 근데 강아지를 키우는 데에는 생각보다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한다고 했다. 적어도 한 달에 50만 원은 자신이 원래 지출하던 부분에서 줄여야 하고, 산책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아무리 피곤해도 시켜야 한다고. 그럼에도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보람과 행복을 강아지가 가져다준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내 일생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꼭 맞는 비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미련을 버리고 포기한다는 것이 힘든 만큼, 그렇게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그 길이 어쩌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대여, 기죽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