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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Jun 06. 2021

퇴사를 고민하는 워킹맘들에게

그맘알아요

나는 출산 전날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 들어가서 2주를 쉬었다. 사실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쉰 것이 아니라 몸져누워있었다고 해야 맞겠지만 아무튼 누워있었으니 쉬었다고 친다. 갓난쟁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출산휴가를 3개월 썼다. 휴가는 본래 놀고 쉬는 것이 휴가인데, 출산휴가는 놀고 쉬는 것이 아니라 극강의 멘붕 훈련이니 출산휴가의 이름을 출산훈련으로 바꾸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개월을 쉬고 아이가 8살이 되던 해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를 낳은 후 7년, 엄마가 된 7년의 세월이 나에게는 어떠했을까?


3개월 차, 말이 3개월이지 아직 응애응애 하는 아기인데 그 시기에 아기를 생면부지 남을 고용해 아이를 맡기고 회사를 갔다. 유감스럽게도 내 주변에 3개월 출산휴가만 쓰고 복귀하는 여자는 없었지만, 회사를 책임져야 하는 내가 수개월간 회사를 비울 수는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이 많았던 첫 시터 이모는 아이가 목을 가누며 놀고 싶어 해도 등을 토닥이며 억지로 잠을 재웠다. 4개월밖에 안된 아기에게 '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CCTV로 듣던 순간 자리를 박차고 집에 달려가 해고를 하고 아이를 부둥켜안고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만난 두 번째 이모가 아이를 5년간 키워주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시절, 아이가 처음 단어를 말하고, 놀이터에 가서 처음 그네를 타보고, 꽃을 보고 기뻐하고, 그런 아이의 모든 첫 순간을 내가 함께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모가 보내주는 아이의 웃는 모습을 카톡으로 받아보며 회사에서 힘든 순간들을 견뎠고, 아이가 아파서 열이 펄펄 끓던 날에도 출근을 해야 했던 나는 이마에 찬수건을 올리고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CCTV를 통해 보며 모니터 뒤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다. 엄마와 애착형성을 하지 못해 출근하는 엄마를 보고도 울지도, 붙잡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이 다행인지 뭔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 4살이 되고 5살이 되면서 말도 많아지고 부모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으나 나는 여전히 일을 하는 바쁜 엄마였다.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이가 함께 놀아달라고 하는데, 내 신경은 온통 회사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중요한 업무에 가있다. 시터 이모가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일을 끝내지 못하고 왔는데 오늘따라 아이가 놀자고 보챈다. '빨리 잤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안 자는 거야'라고 원망 섞인 생각을 하던 찰나, 나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하루 종일 엄마가 보고 싶었을,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반가웠을 내 아이에게 이게 무슨 생각인가. 스스로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다. 맞아도 싼 형편없는 엄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순간 처음으로 퇴사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침은 또 어떠한가.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를 깨운다. 너무 바빠 밥을 제대로 먹일 시간도 없다. 어서 밥을 먹이고 유치원 셔틀을 태운 후 회사로 가야 하는데, 웬일인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한다. 아침마다 아이와 씨름을 하다 며칠간 회사에 지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고객과 미팅이 잡혀있는데 아이는 여지없이 짜증을 내며 울었고, 이렇게 저렇게 달래도 소용이 없자 나도 주저앉아 울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난 오늘 고객 미팅에 늦겠지. 나는 아이가 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셔틀버스에 밀어 넣어야 하겠지. 그 사실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 그냥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아이 앞에서 울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이리라.


6살이 되고 7살이 되면서 유치원을 다니고 학원을 다니는데 아이의 학업적인 부분을 챙겨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현관 앞에 가방을 던져두고 일단 늦은 저녁밥을 입에 욱여넣은 후 아이의 숙제와 공부를 봐주기 시작한다. 나는 체하기 일쑤였고, 일찍 자야 하는 아이는 늦은 시간에 숙제를 하느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졌다. 같은 반 친구의 엄마를 통해 하루 종일 아이의 교육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는지를 듣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하루 종일 아이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시간과 그 질적 우수함. 그리고 내가 퇴근 후 아이에게 제공하는 한 시간 동안의 졸음을 겸비한 교육의 시간.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어쩔 수 없이 내 아이는 학습에서 뒤처지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면서 마음에 여유는 생겼지만 학습적인 부분에서 내가 챙겨주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교우관계에 대해 진솔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다 보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어쩌나, 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사립초등학교에 붙으면 우수한 교육환경에서 좋은 친구들과 안정적인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너무 바쁜 워킹맘은 사립초등학교가 진리라 믿고 사립초에 모든 걸 걸었고, 당연히 입학원서를 썼다. 낙첨하던 날,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담담한 척했지만, 며칠을 식음전폐하고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워킹맘의 고질병인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의 감정을 가장 좋다는 명문 사립초를 통해 해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공립초라니! 사립초보다 상대적으로 하교시간이 이른 집 앞 공립초에 다녀야 한다. 유치원도 4시에 끝났었는데, 초등학교는 12시 30분에 끝난다. 집 앞 초등학교에 다니면 매일같이 놀이터를 가야 한다, 동네 엄마들끼리 잘 지내야 아이가 친구들을 잘 사귀고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다, 학부모들과 긴밀하게 교류하는 사립초와는 다르게 공립초는 교사와 단절되어 있어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다, 공립초는 교우관계나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공립초에 대한 수많은 공포썰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안 되겠다. 이래서는 정말 안 되겠다. 이제 엄마가 나설 때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엄마가 지켜봐 줘야겠다. 근 15년을 다닌 회사를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대표 직함에, 제법 되는 연봉까지 포기하고 퇴사를 결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퇴사를 하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만족도와 아이의 만족도는 어떨까.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경제적 효과 

(-) 내 급여가 없어졌고, 이제 우리 집은 당분간 외벌이가 되었다. 다행히 아이의 아빠가 퇴사를 응원해줬다.

(+) 7살까지 월 100만 원이 넘는 교육기관을 다니던 아이가 공립초에 들어가면서 교육비가 확연히 줄었다. 사립초를 갔다면 월 100만원 가량의 학비에 사교육비까지 최소 월 200만원은 들었을 것이다. 

(+) 아이를 돌봐주던 분들에게 고정적으로 들어가던 월 비용이 제외되었다.

(+) 교육은 장기전이다. 8세 아이에게 엄마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제공해주고 적절한 정도의 선행학습을 도와줌으로써,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학업에서 뒤처지지 않을 두뇌 발달을 도와주고 끈기를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엉덩이 힘을 길러준다.    


정서적 효과

(-) 늘 회사에서 늦게 돌아오던 엄마가 매일 옆에 붙어서 공부를 시키니 엄마는 좋아하는 사람 순위에서 밀려난다. 

(+) 늘 회사일로 머릿속이 복잡해 아이와의 대화에 진심으로 반응해줄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대화를 하며 고민을 나눈다.

(+) 공립초에 가면서 하교 후 시간이 크게 늘어났기에 그 시간을 아이의 정서를 위해 알차게 쓰게 된다. 워킹맘일 때는 상상도 못 하던, 하교 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일, 오늘 학교는 즐거웠는지, 친구에게 어떤 점이 속상했는지, 오늘 놀이터에서 왜 울었는지,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그런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대화들을 매일같이 할 수 있다.


사립초 추첨에서 추풍낙엽처럼 낙첨을 하던 날, 나는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공립초를 갔다고 큰일이 나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아이와 나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 7년간 해보지 못한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다. 학교 앞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들고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고, 아이 손을 잡고 집에 걸어오고, 비 오는 날은 물웅덩이에서 장난을 치고, 파릇파릇 잎과 어여쁜 봄꽃을 보며 함께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둘만의 추억을 쌓고 있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이 되면 좋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실로 마주한 이 생활은 정말이지 감사하고 소중하다. 돈, 명예, 커리어, 도대체 그 무엇이 <아이와 함께함>보다 소중할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고 비교하고 재봤다는 사실조차 지금 생각해보니 참 부질없었음을 이제와 깨닫는다.


오늘도 참 고단하고 힘들었을, 퇴사를 고민하는 워킹맘들에게 용기를 내시라고 전하고 싶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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