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0분,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셔틀을 기다린다. 셔틀이 출발하자 엄마들은 셔틀을 향해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주고는 이내 뿔뿔이 흩어진다. 집이 아닌 회사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크록스나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은 것도 나뿐이었고, 노트북 가방에 핸드백까지 바리바리 들고 있는 것도 나뿐, 한겨울에 패딩이 아닌 모직코트를 입은 것도 나뿐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늘어난 추리닝,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채 아이 손을 잡고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 아이 엄마를 보면서 참 게으르다 생각했다. '아침 출근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늦는 걸까.' 나는 셔틀을 태우고 바로 회사로 출발해야 빠듯하게 정시 출근을 할 수 있단 말이다. 늦는 이들은 또 늦는다. 셔틀 선생님께 아이가 또 늦잠을 잤다며 까르르 웃으며 미안하다고 한다. 여보세요, 지금 옆에 있는 내가 안 보이세요? 우리가 매일 같이 이 추위 속에 기다리는데, 까르르 라니요. 다음 스테이션에서 기다리고 있을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생각 안 하나요.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약 8분을 매일 같이 시린 겨울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그들은 왜 실례에 대한 사과를 안 하는 걸까. 사회성에 왜 저런 오류가 있는 걸까? 셔틀이 떠나고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회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정말 저 엄마들은 왜 저럴까. 내일도 또 늦기만 해 봐라.'
아이 엄마들 중 몇 명은 셔틀이 떠나면 삼삼오오 모여 근처 스타벅스로 간다. 마치 일과처럼 스벅으로 향하는 그녀들은 매일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 걸까. 휴가였던 어느 날 오전 10시에 커피를 사러 들른 스벅에서 매장을 꽉 채운 엄마들의 인파에 압도된 적이 있었다. 번화가도 아니고 동네 스벅인데 그 넓은 매장이 엄마들로 가득했다. 엄마들은 아이 교육, 선생님, 학원 등에 대한 열띤 토론 중이다. 목소리를 낮춰 다른 집 아이를 이야기하는 것도 들려온다.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들릴만큼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며,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부주의함으로 다른 집 아이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정말 저 엄마들은 왜 저럴까.
미팅을 가기 위해 택시로 이동하는 길, 창문 밖으로 수많은 노란 셔틀버스들이 보인다. 손목시계를 보니 2시 30분. 벌써 유치원 하원 할 시간이구나. 셔틀에서 내린 아이들은 꺅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향해 달려 와락 안긴다. 엄마들은 한쪽 어깨에 아이의 가방을 멘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느릿하게 걷고 있다.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신나 보이네. 지금 내 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원을 해서 시터 이모님의 손을 잡고 집에 가고 있을까. 내 딸의 손을 잡아주고는 있을까. 친구들이 다 저렇게 엄마를 외치며 엄마에게 달려가는데, 우리 딸의 마음은 어떨까.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난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전문직 엄마로 커리어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아이에게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그럴싸한 자기 합리화로 정신승리를 해가며 7년을 키웠다. 아이가 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나는 가슴 한편에 품고 살던 사직서를 내고 엄마이자 주부가 되었다. 직업이 바뀌었다고 하는 걸까? 직업이 없다고 해야 맞는 건가? 사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어떤 일 하시나요?
직장인 시절, 늘 비즈니스 통성명을 하던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직업이나 소속과 직함을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이 질문이 새롭게 와 닿는다. 지금의 나는 직업이 뭘까. 주부가 적절하겠지.
주부,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된 나는 방과 후 놀이터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실로 다양한 엄마들을 만나며 전업주부라는 직업에 대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점을 갖게 되었다.
아이 엄마들은 여러 이유로 주부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어쩌다 둘째가 생겨서 퇴사를 한 엄마,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엄마의 케어가 필요해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한 엄마, 매일 같이 전업주부의 하루가 힘들고 우울해 직장을 다니고 싶은 엄마, 어떤 엄마는 대부분 집에 있기에 전업주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스펙의 연구원였던 엄마, 남편이 아이는 엄마 손에 키워야 한다며 네가 나가서 벌면 얼마나 벌겠냐며 직장생활을 반대당한 엄마, 남편이 너무 중한 직업을 갖은 터라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하는 엄마, 주식에 능해 일주일에 천만 원을 버는 엄마, 집안이 너무 부유해 직장을 다닐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는 엄마들도 많았다.
물론 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 못하더라도 전업주부의 삶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담컨대 그들의 남편과 가족들도 전업주부로서의 그녀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있으리라.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직원들이 조직 내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찾지 못해 회사를 떠나듯이, 가족의 인정과 존중이 없다면 전업주부 역시 성취감과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다.
언젠간 내 회사의 20대 여직원이 자기는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했을 때 난 '그게 그리 쉽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여직원은 5년이 지난 지금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어 사랑스러운 아들을 낳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여행을 즐기고 필라테스를 하러 다니며 손목에 롤렉스를 차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솔직해지자.
내가 금수저로 휘황찬란한 인생을 살았다면, 아이를 시터 이모님에게 맡기고 회사를 다녔을까. 사실을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 추웠던 한 겨울, 회사 출근길이 아닌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스벅에 짝지어 앉아 대화를 하고 있던 이들을 보며, 내 아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정보들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핸드폰으로 맘카페를 뒤적이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에 불안했다. 결혼 후 13년을, 회사 대표로서의 삭막한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아 집-회사-집-회사를 반복하다 보니 나는 친구 한 명 없고, 취미 생활 하나 없으며, 할 줄 아는 운동 하나 없는, 그런 시시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갖은 건 워킹맘 또는 회사 대표라는 그럴싸한 타이틀뿐이었다. 물론 맞벌이 생활을 하며 나름 모아 온 재산은 나쁘지 않았으나,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내 모습은 참으로 부족함이 많았던 것이다.
오랜 고민 끝 회사를 떠나 오롯이 아이 엄마 역할을 하게 된 첫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하교를 데리러 가는 길, 오후 12시 20분이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이 시간 나는 회사에 있었겠고 지금은 점심시간이었겠지. 그리고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겠지.점심 식사를 하고 우리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직장인들을 스쳐 지난다. 목에는 회사 카드를 맨 채, 손에 커피를 들고 걷는 그 직장인들 눈에 나는 동네 아줌마이자 일 안 하는 애엄마로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니 왠지 머쓱하다.모든 사람의 삶에는 그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전업주부 역시. 그들이 왜 전업 주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다들 다른 배경과 스토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 채 살아왔다. 알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의 위치가 되고 보니 이제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만의 자격지심과 고정관념, 단편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판단했던 나의 알량함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속단할 필요가 없고,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그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우리라는 사람 그 자체로 정당하기에 누구의 눈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전업맘"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가사 일을 하고 자녀에게 한순간도 빠짐없이 넘치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해주기만 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인정받고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엄마들, 미안했어요.
저는 앞으로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지금까지 나누지 못한 교감을 하며,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살아갈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잃어버리고 살았던 나만의 색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소소하게나마 생산적인 경제활동도 해보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일단, 딱 한 달만 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