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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Jun 11. 2021

엄마의 손길

내리사랑

어린 시절 유치원이 끝나고 나오면 엄마는 내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웃고 계셨다. 어서 와서 등에 업히라고, 엄마 등에 업혀 집에 가자고.


반복되는 일상이었기 때문일까, 너무 행복한 기억이라 그런걸까, 그 장면은 마치 사진처럼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 기억을 빌리자면 나는 배시시 웃으며 엄마 등에 업혔다고 한다. 안아주는 것만큼이나 포근하고 든든했던 엄마 등에 업혀 엄마 등에 얼굴을 대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따뜻했겠지, 스르르 졸리기도 했겠지.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셨다. 엄마는 항상 내 뺨을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 새끼"라고 하셨다.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게 아니라 늘 내 뺨을 실크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손길 하나로, 나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난 소중하다. 난 사랑받는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그런 소중한 아이가 생겼다. 어느 날 딸의 동그랗고 보드라운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그걸 지켜보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항상 그렇게 뺨을 쓰다듬어 줬던 거 기억나니?" 내 아이를 어루만지던 내 손길에는 우리 엄마의 기억이 묻어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내 딸의 얼굴을 보물처럼 어루만진다. 사랑을 받은 기억은 시간 속에 흩어지지 않고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받았던 사랑 그대로 베풀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말했다. "네 외할머니가 항상 엄마를 그렇게 소중하게 쓰다듬어 주셨거든. 이런 게 내리사랑이지"


외할머니의 사랑과 손길을 기억한 엄마는 나에게, 우리 엄마의 사랑과 손길을 기억한 나는 내 딸에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전한다.


항상 내 곁에 있던 우리 엄마, 늘 등을 내보이며 업히라고 웃어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옆에 있어 나는 늘 마음이 평온했고 한순간도 빠짐없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딸이 그러하기를 바란다. 늘 아이 곁에 서서 믿어주고, 웃어주고, 귀 기울여주고, 따스한 손길로 얼굴을 감싸주고, 등을 내어주며, 그렇게 곁에 있어주리라. 그리하여 내 아이도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고, 받은 사랑을 주변에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숙제와 공부를 시키고 재우기 바빴던 나였고, 아이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할 여유도, 물어볼 시간도 없었던 나였다. 내가 아는 좋은 엄마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풀리지 않는 숙제였고 늘 아이에게 미안했다. 갖은 애를 썼음에도 아주 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준 엄마로서의 점수는 처참했다.


회사를 떠난 지금,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내 아이의 유년시절을 따뜻한 기억과 소소한 대화들로 꼭꼭 담아주어 마음과 정신이 건강한 아이가 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나에게 있어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정의를 내려보니, 포기한 연봉이 결코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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