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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 Lounge
Jun 26. 2021
진짜 매너와 가짜 매너
아이를 통해 매너를 배운다
오랜 직장생활과 네크워킹이 많은 업무를 했던 터, 나 자신이 사회생활 만렙에 소셜 스킬 최상위라고 믿고 살아왔다. 요즘 나는 몸에 배어있던 나의 매너가 철저히 계획되고 계산된 행동에 불과했던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당연하지 않나. 직장 생활에서 보여주는 애티튜드가 나를 평가하는데. 더 멋진 행동과 어투로 좋은 평판을 쌓을 수 있는데. 업계 유명인사나 테드 영상을 보며 스피치를 배우고, 자기 계발서를 보며 대화법과 행동전략을 배우고 매너를 배운다.
그런 직장을 떠나 엄마가 된 나는, 초등학생인 아이를 통해 세련된 매너를 배운다.
아이는 친구가 바닥에 떨어뜨린 물건을 주어 친구에게 건네주고, 신발을 벗고 그네를 타던 친구의 신발이 흐트러지자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 두고, 울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조용히 옆을 지켜준다. 친구가 너는 어떤 인형을 좋아하냐고 묻자 대답을 하더니 이내 "너는 어때?"라고 물어본다.
아이는 이런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 봐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누가 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이렇게 해서 친구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어른들에게 멋진 어린이라는 칭찬을 받고자 함도 아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해둔 것이 자신이었음을 애써 알리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뿐이다.
우리는 친구의 흐트러진 신발을 가지런히 해줄 수 있을까? 해주고 싶어도 괜한 오바라는 생각에 섣불리 하지 못할 듯하다. 울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위로의 말이 적절할지, 어떻게 위로해야 좋은 친구의 모습일지 고민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신이 나서 나에 대해 말하기 바쁠지도 모른다. 상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따위는 애초에 궁금하지 않았기에 상대방에게 되물어보는 것은 이내 잊을지도 모른다.
능숙한 커뮤니케이션이나 상대를 배려하거나 염려해주는 행동, 크게 궁금하지 않은 상대의 근황을 물어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중에 내리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행동,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 이런 일상적인 행동들은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일까, 그리 하지 않으면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학습된 배려일까. 지극히 사회적인 매너일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주변을 의식하는 배려와 매너로 무장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나 스스로가 뿌듯하고, 좋은 행동을 했음에 으쓱할 수도 있는 <나를 위해서 했던 배려>들은 또 어떤가.
정말로 상대방의 마음에 서서,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심지어 상대방이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위한 진심이 담긴 배려를 보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진짜 매너와 진짜 배려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행동들은 아주 작은 빛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빛이 모여 우리 주변은 더욱 밝아지고 따스해질 것이다.
남에게 피해 주고 살지 말자가 내 인생 모토였다. 남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피해는 주지 말자라는 주의였다. 그러나 이제 깨닫는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소리 아니던가. 이제는 내 아이와 같이 주변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소하지만, 아주 작은 빛이지만, 내 아이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주변 사람을 위해,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씩 빛을 비춰봐야겠다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내 아이에게서 "진짜" 세련된 매너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