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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tober Oct 25. 2020

여행, 그리고 당신

당신을 향해가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경유하는 곳인 이스탄불이에요. 비행기 타고 두 시간 정도 날아왔을 뿐인데, 벌써 이스탄불에 도착해 버렸네요.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었는데, 경유하기 위해 들렸던 이스탄불 공항마저 익숙해졌어요.

익숙해질 때쯤 돌아가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 하지만, 매번 드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이렇게 긴 여행이 될지 몰랐어요.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할 때 처음 알았어요. 생각보가 더 긴 여행이라는 걸. 처음에는 마냥 즐겁다가, 내가 유럽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다가,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가 일이 생겨 혼자 떠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이 많은 일중에 아직도 생생한 건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타야 했던 공항버스를 놓친 순간이에요. 재밌는 건 당신이 생각나서 그 순간에도 화가 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기억나요? 지하철에서 목적지를 지나쳐 짜증 내던 제게 당신이 해준 말이요.

"지나치면 어때, 좀 돌아가면 되지~" 여행 중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때면 당신이 해준 그 말을 떠올려요.




이번 여행은 이전 여행과 다르게 참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전에는 혼자 하는 여행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새롭게 시도를 하게 되었어요.

우연치곤 너무나도 신기하게 자주 가는 단골집 사장님네 친오빠를 만났고, 체스키 크룸로프 투어와 프라하를 함께 한 동갑내기 친구, 체스키 크룸로프 가이드 투어 때 만났다가 우연히 부다페스트에서 다시 만난 친구, 패션감각이 뛰어났던 친구, 함께 오기로 했던 친구와 이름이 같았던 친구, 여행 중에 국가고시를 합격한 친구, 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던 친구, 입대 전 마지막 여행으로 떠나온 동생, 베를린에서 단숨에 친해졌던 살가운 동생 두 명과 친형제끼리 여행 온 친구들, 한 달간 오로지 독일만 여행하러 온 친구까지.
문득 당신이 말해준 '여행에서 만나는 요정'이 생각나더군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이렇게나 많은 요정을 만났네요. 덕분에 외로울 틈도 가져간 책 읽을 틈도 없이 하루하루 재미있게 보냈어요.




여행이 한창인데, 친구가 묻더군요. 한국이 그립지 않으냐고. 생각보다 길게 떠나온 게 아니라 그리울 틈이 없었어요. 저만 즐기는 게 아쉽긴 했지만, 한국에서와 다르게 매일이 다르고, 당장 오늘 뭐할지, 뭐 먹을지 고민하는 원초적인 고민을 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그저 오늘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을 살고 있다는 게 무지 행복하더라고요.

혼자 떠나왔지만, 혼자 인적 없었던 여행이었어요. 이번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한 건 처음이었는데, 때론 투머치 하기도 했지만, 자극을 받기도 하고, 새삼스럽지만 같은 걸 봐도 사람마다 관점이 다 다르다는 걸, 세상은 넓고 전 아직도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걸, 이런 이유로 조금 더 빨리 유럽에 왔어야 했다는 걸 느꼈어요. 세상에는 정말 멋진 곳도, 멋진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만남도, 이별도 많이 해서 그래서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아쉽고, 가장 슬픈 여행이에요. 그래도 여행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다음 여행엔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달이 참 밝아요.



2020.02.10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언제나처럼 그리운 내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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