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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Sep 23. 2023

사과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 별명이 못된 애

주말 뭐 할까 궁리 중이신가요?

오래된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하나 해 드까요?



회사의 꽃은 경리팀이라 하지요.  옛날 좀 옛날,  연탄불에 밥 해 먹든 시절,  그 꽃을 등에 업고 아름답지 못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경리 이사님이 계셨으니..........................


나는 무역부 직원으로 수입자재 대금을 은행에서 결재할 때는 회사에서 당좌수표를 받아서 갔습니다. 요즘도 당좌수표 사용하나 모르겠네요.  결제 금액이 꽤 컸습니다. 그 수표는 일반 수표가 아니어서 그것을 가지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경리 이사님은 장난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뭐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을 무척 기분 나쁘게 하는 경이로운 재주를 부리시며 "당좌수표 영수증 왜 안 가져와??? 무역부 당좌수표로 무슨 짓 하고 있는 거야???? 이것들 도둑들이네."  외근 가는 직원이 자주 깜박하고 그날그날 영수증을 안 챙겨 와서 나도 중간에서 계속 채근을 당하는 것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사님이 "무역부 단체로 도둑놈이네 당좌수표로 뭐 했어???"라는 말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욱했습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지 않겠다는 목소리로   "이. 사. 님., 영수증 챙겨 오지 않는 그 직원만 좀 나무라시면 안 될까요? 저 더 이상 그 도둑이라는 말 안 듣고 싶습니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감히 여직원이 하늘 같은 경. 리. 부. 이. 사. 님. 에게 따졌네요.


온 회사, 그 버르장머리 없는 나의 이야기로 시끄럽자 급기야 후배 격인 우리 무역부 이사님이 경리과로 불려 가시네요.  안 봐도 비디오. 이사님이 돌아오시더니 "노을양 이리로. 음..... 경리부 이사님이 여직원이 대들었다고 몹시 기분 나빠하시니 가서 사과드려요".  나는 그 말꼬리 잡고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고  "불라불라호랑말코@코끼리똥띠용 너거집멍엉이니가입닥치면좋겠어~~입니다. 사과는 그분이 먼저 하셔야 하고 사과를 하시면 어린것이 대던 것에 대한 사과를 하겠습니다." 나는 사과에도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무역부 이사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과에도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무슨 옆집 멍멍이 소리로 들렸겠지요.  거의 매일 같이 무역부 이사님은 나에게 사과를 종용했고 나는 급기야  "이러지 마시고 저를 해고하십시오."  나는 그때 노동법 이런 거 몰랐습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들어 알고 있는 해고시키면 준다는 해고 수당이나 받고 그만두려고 ㅎㅎ.  그 말 들으시더니 그분은 뭔가 찔렸는지 더 이상 나에게 사과하라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경리과 과장님이 또 자꾸 사과를 해라 어쩌고 저쩌고. 나의 분노게이지를 계속 유지하게 했습니다.  결국 그 분노는 문제의 원인 제공자인 무역부 남자 직원을 향하여 터졌습니다. 이판사판 도그판.  “야 주 00, 니 바보가 (이 말 너무 결정적으로 나쁜 말 ㅋㅋ). 이게 뭐냐고 본인 때문에 맨날 도둑놈 소리 듣는 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요.  조금만 정신 차리면 챙겨 올 영수증 때문에 허구한 날 도둑놈 소리 듣는다고 당신 때문에!!!  나는 그 이사님의 의심의 눈초리가 너무 싫어욧.”  그런데 웃긴 것은 정작 그 직원은 미안해하는데 그 옆에 있는 과장님이 "야 노을이, 너 남자 직원에게 뭐 하는 짓이야." 딱 욕 나오는 뽀인트!!!  나, 이미 도그판을 상관치 않으려 했으므로 절대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과장님, 과장님이 주 00이 대변인 인가요? 왜 나. 서. 세. 요.  가만히 계세요, 남자 직원, 남자 직원은 여직원에게 잘못 지적받으면 안. 돼. 나. 요?  저 지금 그만둘 작정하고 시작했으니 가만있으세요 봉변당하십니다." 이미 그분은 나에게 봉변당하고 있었고 미치도록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 과장의 개인적인 배경을 조금 설명하면 그분에게 여자는 남자의  허락하에 살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와 ~~ 우!!  그 당시에도 너무 쇼킹했습니다.  그때는 휴대폰 없어서 그분 마누라 맨날 삼실 전화로 전화합니다  “이거 사도 돼요 저거 사도 돼요"  듣고 있는 저 매일 미치는 줄.  그런 분이니 이렇게 남자를 존중하지 아니하는 여직원이 이쁠 리가요 천만에요 만만에요.  천하의 나쁜 여자아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의 별명이 "못된 애"였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맨날 밤새워 일하는 회사 힘들어서 그만두고 퇴근이 5:30이라 퇴근 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회사로  옮겼는데 니 팔자에 공부는 무슨 ㅠㅠ.   누가 건들기만 하면 터지기 직전인데 사람들은 시키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죽을 둥 살 둥 하니까 이일 저 일 다 시키려고 하면서 가끔 부탁을 거절하면 말 안 듣는다고 그리 불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일을 참 좋아했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아무렇지 않게 감정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만 했습니다.  나는 성격이 좀 고약해서 그 엉망인 상태를 사실 즐겼습니다.  왜? 아무도 안 건드려서 일만 하면 되니 편했거든요 ㅎㅎ.  나는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고 또는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계획도 있었으므로 무서울 게 없는 직원이 된 거죠.  나는 할 말 다 하고 필요한 거 다 이야기하고 암치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뭔가 말단 여직원이 그렇게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남자고 여자고 모이면 무역부 노을이가 안주거리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경리부 이사님과 무역부 00 과장 및 주 00 씨에게 사과하지도 사과받지도 않고 그저 당당하게 사직 인사를 고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알지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저거 어디 쓸 수나 있을까?" 당신들이 왜 나의 쓰임새에 대해서 걱정이세요  흐구 진짜 의미 없다이,   난,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거둬줘 제발!!!!!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다시 곱씹어 보아도 수직적으로 누르려는 그런 행태 여전히 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외교적으로다 “이사님 건강하세요 호호호”라는 애교 섞인 작별 인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여유가 생기지 않는 덜 성숙하고 다소 날것의 향을 풍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은 그냥 가지 않고 모난 돌을 조금씩 깎아 주었나 봅니다.  요즘의 나는 좀 보들보들 해졌고 립 서비스도 곧 잘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툭 튀어나온 모난 부분은 내가 살아가면서 버리고 싶지 않은 신념의 일부라 생각하며 너무 깎여서 없어지지 않을 만큼만 유지하며 주위와 두루두루 잘 지내보려 합니다.


P.S.  회사는 참 웃기는 조직입니다.  직원이 퇴직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결혼했다는 소식은 없고 소문으로는 대학을 갔다더라 유학을 갔다더라 재미나게 씹었나 보더라고요.  어느 날 집으로 누가 전화했다고 합니다.  노을이 요즘 뭐 하나요?  엄마가 설명을 하고 서울 직장 전번을 준 모양입니다.  그 뒤로 저에게 커피 타 달라고 하다가 거절당한 언니, 나에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그 언니가 전화했습니다.  “노을아 무역부 이 과장이 니 집에 오면 같이 밥 묵으라고 돈 주더라  언제 오면 연락하거라."   그래서 우리는 부산 서면의 호수 그릴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는 했는데 이 과장님이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과의 기회를 이번에는 내가 놓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과장님 미안해요 저가요 평소에는 조용하고 묵묵한 성격인데 누가 불을 지르면  대형화재가 발생하네요 ㅎㅎㅎ.  다행히 저 요즘 좀 변했답니다.  이 과장님에게는 그때 제가 할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태도가 꼭 그렇게 불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진정 사과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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