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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Nov 17. 2023

여자들은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준다

- 마음의 온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부모님이 이북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빈대떡과 평양식 만두 그리고 요즘 핫한 평양냉면 사촌쯤 되는 겨울 국수를 먹고 자랐다.  부모님은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라고 하시면서 겨울이 되면  맛있는 육수를 만들장독간에 두었고  살짝 얼어 살얼음이 생긴 그  육수에 우리 가족은 국수를 말아먹었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아 이거 어릴 때 먹던 맛이네" 하면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요즘과 달리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엔 겨울밤이 한없이 길었고 국수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에 우린 자주 밤참으로 차갑고 맛있는 육수와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먹는 호사를 누렸던 것 같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장독간에 내놓은 육수에 더 이상 살얼음이 얼지 않서이기도 했고 자매들이 성인이 되면서  점점 밤참 국수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20세기에 살던 우리는 21세기 사람이 되었고 부모님은 차례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먼 길 떠나셨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겨울 국수는 이제 더 이상 없지만 주위에 계신 몇몇 어머니들은 엄마처럼 된장 있냐 하시면서 된장도 챙겨주시고 고소한  참기름도 챙겨주시기도 하신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그런 보살핌을 받을 때는 내 엄마가 없더라도 주위의 다른 엄마들이 충분히 내 엄마 같은 역할을 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너무 고맙고 눈물겨웠었다.  그리고 자매도 또 나의 친구들도 서로에게 엄마의 역할을 해주기도 해서 엄마가 없는 세월이 마냥 서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나에게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시던 다정하신 친구의 엄마와 시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셨고 한 분은 올해 초 먼 하늘나라로 가셨다.   씩씩하시고 에너지가 넘치던 멋진 어른이셨던 그분을 생각하며 삶을 대한 나의 마음새를 자주 고쳐 잡기도 하면서 그분을 닮으려 한다.  그리고 나도 어떤 여자들에게, 특히 나보다 어린 여자들에게,  그게 누구이든 간에, 엄마 또는 좋은 선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열심히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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