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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Sep 09. 2023

펜팔이라고 들어는 보셨나요?

- 추억이 새록새록


두유노 "펜팔?" - 이거 알면 조큼 오래된 사람이라고 그러던데요 ㅎㅎ


옛날, 그 옛날 태어난 나는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 아니라 TV와 라디오 그리고 잡지와 책이 주류이던 그런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서 대부의  그 시대 우리는 자칭 문학소녀라고 하지 않았나? 나의 언니는 지금도 많이 읽지만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고 그런 언니 덕분에 나도 열심히 언니 따라 책을 읽었는데 아마도 나는 혼자서 언니 따라잡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헤르만 헤세를 알게 되었고 이 작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 범우사라는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  근데 그 편지 내용이 범우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같은(독자의 이야기도 실리고 뭐 그런 기능의 소책자)데 실렸네.   얼마 뒤 갑자기 대한민국 국군 아저씨들로부터 편지가 오는데 진짜 너무 웃겼다.  국군장병 위문편지를 아시나요?  "라떼" 말이죠 국민학교 및 중고등학교 시절 매년 국군장병 아저씨들에게 의무적으로 위문편지를 보내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내가 반대로 국군아저씨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은 너무너무 황당한 사건이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개인 정보니 뭐니 이런 개념이 전혀 없었던 때라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가 적나라하게 내 글 아래 떡허니 인쇄되어 있었다.  요즘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누구도 딴지걸 생각도 못함.  한참 동안 매일 같이 배달되어 오는 국군장병 아저씨들의 편지.  울엄니, 두 팔 걷어붙이시고 딸냄 편지를 검열하신다.  엄마의 그런 열성적인 모습 처음이었.  엄마만 읽나요 언니도 읽고 동생들도 읽고 하하 호호했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고 모두 버리라고 하심.  엄니 생각에 딸내미 스물을 넘겼으니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가야 된다고 생각하셨겠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있지요.  그래 한 넘에게만 답장을 해 볼까나.  장난기가 스믈거린다.  어느 넘을 "미스터 국군장병"으로 찜해볼까 혼자 호작호작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본다.


지금은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니 손글씨 잘 쓰는 사람 보기 힘든데 그때는 글씨 좋은 사람이 꽤 있었다.  그 편지 중에서 내용도 괜찮고 필체도 제일 좋은 두 놈의 편지를 골라 저울질하다 내 맘이 조금 더 가는 필체의 편지에 답장을 하였다.  그 군인 아저씨가 다시 나에게  답장을 해오면서 범우사가 그 잡지를 전국 군인들에게 뿌리고 군인들은 또 장난 삼아 누구에게서 답장이 오는지 내기를 걸면서 편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심한 넘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그 친구가 내 답장을 받고 내무반에서 스타가 되었다는 사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데없이 군인에게서 받은 편지에 거의 답장을 안 한다는데 호기심 천국인 나는 하고 말았네 그려 쩝 ㅎㅎㅎ.  아 그리고 그것은  운명인가요 그 군인도 20살 나도 20살.  친구 하기 딱 좋은 나이 또는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


그리하여 그 머시마 제대하고 논산인 집에 가서도 계속 편지를 하고 ㅎㅎ. 심지어 어느 날은 부산에 놀러 오겠다고 함. 펜팔은 펜팔이 주는 로망이란 게 있는데 이 머시마가 그 국제적 룰을 깨려고 하네요, 아아... 아쉽다 펜팔 잼났는데. 그래, 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얼굴 한번 보겠다는  너의 소망 들어주고 말고.  나는 서로 한번 보고 이제 내 인생에서 나가주세요 하려고 했다 ㅎㅎ.   혼자 이런 말을 하면서 부산에 온 그 넘을 모시고 태종대로 갔다. 그날 소년과 소녀는 만나서 뭔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엔 없지만  그 머시마 호락호락하지 않은 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속앓이가 심했나 보다.  그 머시마 사촌누이가 국악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부산공연 오는 길에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단다. 내가 국악에 또 관심 있어했으므로 그 만남을 마다 하지 않고 누나를 배알 했다. 누나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든지 지금도 그 머시마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누나 얼굴은 또렷하다.  노래 잘하는 구관을 가지신 분, 게다가 양귀비도 근처에 못 올 정도로 아름다움이 눈부셨던 분.  누나는 집으로 돌아가 그 머시마에게 부산 가시나는 그냥 친구로 좋은 아이니 계속 친구를 해라 하셨다 한다.


근데 그 머시마 불타는 청춘이라 자꾸 산 가시나를 괴롭힌다요. 는 인생이 더 복잡해지지 전에 엄청 독한 편지 써서 작별을 고했다.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이미 그려 놓은 인생 큰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 속에 애석하게 그 머시마는 없었다. 그날 그 머시마랑 주고받은 편지 다 찢어버리고 날아갈 듯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참 철부지였다. 누군가의 감정을 그렇게 짓밟아 놓고 홀가분했다니 ㅎㅎㅎ.  엄마매우 좋아하셨다.  펜팔 하는 그 꼴이 상당히 못 마땅하셨는데 끝낸다고 하니 반가웠던게지.  오랫 시간이 지나고 문득 그 머시마 생각을 해보니  그 편지 왜 찢었니 싶더라 ㅎㅎ.  지금 보면 진짜 겁나 잼날 것인데.  

똥멍충!!


그 머시마 이름은 기억 안 나고 성은 윤 씨였던 것 같다.  윤00 머시마, 어딘 가에서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겠지.  그대는 아직도 논산에 살고 계심까? ㅎㅎㅎㅎ.  


나이가 드니 이것저것  그립다.  특이한 추억은 더더욱 그립다.  잘 끝맺지 못한 일은 더 마음 쓰인다.  윤 00아, 미안해 늦었지만 사과할게.  부산 가시나는 그 뒤로 너랑 펜팔 할 때만큼 가슴 설렌 적이 없었단다.  이걸로 그때 내가 모질고 독한 말 한 거 퉁치자.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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