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녀는 이유 없이 떠났다고 했다
무던한 하루였다.
벚꽃은 여느 해처럼 피었고,
그해의 봄도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 시간이 멈춰버린 그날 이후 모든 계절이 그러했다.
“그녀가 저를 떠난 이유를 정말 모르겠어요.”
그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빛과 대답은 반박자 느렸다. 무기력하고 초점 없는 시선, 그는 뭔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둔하게 견디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 말, 아주 익숙했다.
누군가를 떠난 사람은 이유를 말하지 않고,
남겨진 사람은 그 이유를 평생 붙잡는다.
나는 그의 사연을 정리해 적었다.
[사연 접수]
• 상대: 전 여자친구
• 요청: 마지막 메시지
• 이유: 이유 없이 떠난 그녀에게 묻고 싶다
“이유를 알게 되면, 다시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
여자의 입장에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애정도 기대도 남지 않았다는 뜻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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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이별 사연을 받는다.
누군가는 다급하게,
누군가는 체념처럼.
그들의 감정을 대신 정리해 주는 일을 한다.
‘사랑의 마감’을 대신 써주는 일.
가끔은 재회를 가능하게 돕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재회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이별의 시한을 미뤄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상처는 반복된다.
결국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그들의 상실과 슬픔을 잠시 미뤄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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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녀를 위해서 모든 걸 했어요.
헤어질만한 잘못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떠났고,
그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여자의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사랑은 오로지 자신의 방식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조용히 지쳐갔을지도 모른다.
“여자친구가 대화가 재미없다고 했어요.
제가 공감을 잘 못 한다고도…”
“최근에 만날 때, 웃는 얼굴을 자주 보셨나요?”
“… 잘 웃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자에게 ‘공감’은 종종 학습된 리액션이거나
억지로 만들어내는 연기다.
순수한 사람일수록 그런 연기를 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런 공백 속에서 외로웠을 것이다.
공감 없는 대화, 웃지 않는 식사,
함께 있어도 혼자인 느낌.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믿음.
그것도 연애에서 함께 쌓아 올리는 한 축이다.
그 믿음이 사라지면, 관계도 서서히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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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뢰인의 마음을 대신 정리해 메시지에 담았다.
그녀가 듣고 싶어 했던 말들, 받고 싶어 했던 작은 선물, 그리고 이미 늦어버린 사과까지.
모든 내용을 담담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적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감정이 풀릴 때쯤 의뢰인을 위해 이별의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을 담담하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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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미 떠나버린 사람에게서 조차 이별을 설명받고 싶어 한다.
마치 설명을 들으면,
조금은 덜 아플 수 있을 것처럼.
문득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예전의 나도 이유 없는 이별을 겪은 적 있다.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고,
결국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너에게 이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라는 말이 전부였다.
청천벽력 같던 그 말이 오히려 모든 걸 이해하게 해 줬다.
솔직한 이별은, 한밤에 푸른빛이 서린 칼날처럼 서늘하고 날카롭지만
그 잔인함이 오히려 관계를 더 분명하게 정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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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그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아마도, 여전히 그녀에게서 답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답답하리만큼 무던한 자신의 성향처럼,
그 시간을 조용히 견디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정리하려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이별이 조용히 마감되었다.
[수연의 Note: 이유를 모른 채 사랑이 끝나버렸다면,
당신이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는 것, 어쩌면 그게 이별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