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이야기 - 11 (2) 드로잉북에 담은 아이들의 이름
도착한 날 기절하듯 잠들고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밤에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한 바오밥 나무를 볼 수 있다니..!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내가 머무르는 학교 건물 근처를 돌아보았다.
바오밥나무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던 가로수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낀 건 바오밥나무가 생각보다 얇아서일까, 내가 무미건조해서일까.
돌아보며 사진을 찍다가 내가 마다가스카르에 가기 전에 그린 그림과 비슷한 장면에 서게 되었다.
바오밥나무에 조금 가까이 가서 보고 기둥을 만져도 봤지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외부인, 외국인이 바오밥나무 가까이에 갔기 때문에 지나가던 미케아 부족 아주머니께서 째려보고 지나가셨다. 미케아Mikea 부족에게 바오밥 숲은 삶의 터전이다. 물이 부족한 마을에서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바오밥 나무뿌리 바부babo를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바오밥나무가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상한 외국인이 바오밥 가까이 가는데 경계할 수밖에. 조심할 걸.
나무와 탁 트인 하늘, 구름 사진을 찍다가 조금 늦게 프레임 안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슬슬 학교 올 시간이구나. 아이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가 간단한 말 밖에 할 줄 몰라서 아쉽다. 밥은 먹고 왔는지만 여러 아이들에게 여러 번 물어봤다.
사진을 찍어주면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았는지. 나는 그럼 슬쩍 드로잉북과 펜을 꺼낸다. 자기들 사진 찍어주는 것도 좋아하니 그림 그려줘도 좋아하겠지? 한 명씩 눈을 맞추고 눈, 코, 입 그려보았다.
그림 속 정면을 보는 아이들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렸고,
시선이 아래를 향한 아이들은 내가 종이에 그려나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드로잉북에 담았다. 이름도 물어보고 같이 적어두었다. 시간 날 때마다 드로잉북을 들쳐보니 마치 틈틈이 복습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이름을 많이 외울 수 있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옆에 있는 친구 이름은 모르는 게 미안해서 옆에 앉히고 이름을 물어보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내 드로잉북에 아이들의 이름을 담았다.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물어보면, 아이들은 내 이름을 물어봤다. 내 이름은 운자Onja라고 하면 히히 외국인이 우리같은 이름이 있네 한다.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 이름 알려주면 너희 그냥 나 외국인이라고 부를 거잖아. 그런데 아이들 중 몇 명은 집요하게 한국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본다. 집요한 만큼 발음도 나름 잘 한다.
쉬는 시간 학교 정자에 올라 쉬려는데 누가 분필로 의자에 낙서를 해놨다. 내 이름! 누가 한 거지? 난 아이들이 좋은데 아이들도 나를 좋아하는 건가? 기분이 좋아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씩씩하게 분필로 긁은 획마저 귀엽다.
아이들과 뛰어노는데 팀원 W가 내가 잠시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들고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내가 나온 사진은 거의 없는데, 이 사진처럼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보석 같고 감사하다.
마지막 날 저녁 교장선생님께 물품을 전달하며 사진을 찍었다. 학교 건물 전기가 부족해서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깜… 빡… 깜… 빡… 했다. 불이 들어왔을 때 사진을 찍느라 교장선생님, 팀원 F, 그리고 사진을 찍는 나는 긴장해 함께 숨을 참고 함께 숨을 내쉬었다.
집은 나지막이 있고, 땅 위로 우뚝 솟은 건 나무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해 지는 풍경은 매일이 아름다웠다. 지평선부터 무지개가 넓게 하늘을 뒤덮은듯한 모습. 미래에 기술이 좋아져서 이 마을의 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할 거다. 마을의 사람들과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 잘 가 인사하며 바라보는 노을은 …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그 장소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이기에.
마을을 떠나 안타나나리보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 안 되는 시간이지만 진득하게 함께한 시간이기에 헤어지기 아쉽지만, 7개월 지나고 또 본다!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그림 모아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