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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은 Oct 11. 2019

The record #22_일에 대하여

만약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면,

@4dgraphic / https://unsplash.com/@4dgraphic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많이 무서웠다. 말하자면 ‘손에 익은’ 묘한 자신감 이면에 따라붙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얼마큼 잘할 수 있을까, 잘한다는 건 뭘까, 그동안은 어떻게 해왔던 거지? 그야말로 겁 없이 썼던 기절의 기사는 취재원의 감사한 피드백과 무관하게 지금의 나를 화끈거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지낸 1년 동안 (곧 꼬박 1년이 다가온다) 재미가 아닌 괴로움으로 쓰면서 나를 먹여 살렸다. 먹고사는 일의 고통을 보다 절실히 느끼면서.


그리고 오늘, 가볍게 훑어보시라고 전달한 사전 질의서에 한 문단씩 성실히 답변을 달아 간밤에 메일을 보내온 취재원과 마주 앉게 되었다. 시간을 날로 때울 수는 없으니까 나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던져야 했으므로 그도 나도 조금 긴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1시간 가까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에 사전질의서는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기 위한 제스처이고, 실제 인터뷰에는 나도 상대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아예 라이브로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내가 해온 인터뷰의 시간에선 아주 드문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이 아닌 대화의 자세로 취재원을 대하게 되었는데 녹음을 중단하고 편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를 해버린 것이다. 마침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영역으로써의 글’에 대해 말하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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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지금까지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 앞에 앉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담기 위함이 아닐까, 조금은 운명적으로 생각되는 날들이 있다고. 이 재능을 오롯이 내 이야기를 하고 나라는 인간에만 집중하는 데에 써왔던 시간이 분명 있었는데, 그런 날들보다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확실한 동력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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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인터뷰를 마치고 구태여 하지 않았던 ‘오늘 해주신 말씀들, 잘 담을게요.’라는 말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다짐처럼 하고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09.19.)


그가 사인과 함께 책 사이에 끼워둔 행운의 2달러처럼, 뜻밖의 시간을 선물 받은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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