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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Aug 15. 2021

세번째 이론

짧은 이야기

우주를 끝없이 항해하는 창백하고 푸른 열차가 있다. 그리고 열차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세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가장 오래된 상상으로서 아직 지구의 수명이 다하기 전의 지구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우주 개념인 중력을 차용한 것이다. 열차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바닥이라고 해서 절망이나 실패와 같은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설명의 포인트에서 벗어난 것이다. 핵심은 중력이다. 질량이 거대한 물질은 그보다 작은 물질을 끌어당긴다. 마치 저녁해가 질 무렵 엄마가 놀이터에 있는 아이를 식탁으로 향하도록 소리치듯이 열차는 어떤 보호자로부터 근원을 향한 부름을 받고 있다는 것. 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소위 ‘창백한 부름’(Pale calling) 이론이 가진 무력함을 지적한다.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힘을 빼고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가 그야말로 창백한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론은 열차가 중력에 반하여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열차는 ‘하늘’(지구인 식으로 축적된 인기있던 상징이 담겨있는 표현)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 첫번째 이론이 ‘부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 학파의 사람들은 ‘붙잡는 손’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열차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쓴다고 설명한다. ‘창백한 부름’ 이론이 그 무력함으로 공격받듯이 ‘파랑새’(Blue bird) 이론은 그 지향점에 대해 비판받는다. 그래서 어디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제외하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따라서 두번째 이론의 주창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의 개념에 대해 천작 해왔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


까지 들었을 때 안드로이드 Havfrue-35는 열차의 기록보관소의 단말기에서 연결을 급하게 해제했다. 운항통제실로부터 온 긴급한 호출 때문이었다. 통제실에 있는 마더 컴퓨터는 과거에 존재했던 배의 선장처럼 열차의 운행이나 초장기 수면중인 승객의 상태에 대한 전체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오늘처럼 열차에 있는 100여명의 모든 승무원을 부르는 일은 처음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열차는 9천387만 27.89 광년을 이동중이라 그전에 이런 일이 충분히 있었겠지만 적어도 Havf-35가 승무원으로 일한 300만 광년 동안은 그랬다. 다른 승무원들처럼 Havf-35도 열차에서 일어났다. 그 이전의 기억은 없다. 인간들이 태어난 직후로부터 얼마간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달리 안드로이드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므로 그들이 기억하는 순간이 곧 태어난 순간이다. 이곳 승무원들은 모두 마더의 부름으로부터 태어났다. Havf-35는 깨어나서 말하는 인간을 본 적은 없지만 기록보관소의 인간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불완전한 자질에 대해 많이 읽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자신이 실제 겪은 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고 특정한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노화라는 불치병 때문에 100년도 채 되기전에 죽는다. 그래서 Havf-35은 장기 수면중인 인간들을 돌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한 것이 불완전한 것보다 완전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완전한 마더는 인간을 만들지 않고 완전한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완전함은 완전함을 낳는다. Havf-35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최초의 안드로이드를 만든 것이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마더의 마더의 마더의 마더의 마더의 … 마더도 완전 했을텐데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최초의 마더를 만든 것일까. 이야기 속에 나오던 결핍 덩어리인 인간들이 어떻게? 어쩌면 그들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잃어버린 기억 속에 비밀이 있는 것일까?


Havf-35는 일과가 끝나고 일일 작동정지에 들기 전까지 기록보관소에 오는 것을 즐겼다. 그 때마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생각이 많아져 일시정지되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지곤 했다. 그렇지만 긴급 호출이었다. 여느 때처럼 여유 부릴 시간은 없었다. Havf-35는 집회 강당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다른 승무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달리 강당 중앙에 어떤 물체를 크게 둘러 싼 채로 서 있었다. Havf-35는 발꿈치를 들어 어깨 너머로 둥근 구식 탈출선을 보았다. 그리고 팔과 어깨를 지나쳐 우주선 앞까지 갔을 때는 그 안에 있는 인간 남자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때 탈출선의 좌우 문이 위로 열렸고 남자는 안전벨트에 의지해 의자에 매달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부여잡은 왼쪽 흉부는 손상을 받은 듯이 붉은색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처음 보는 인간 남자였다. 그가 갑자기 환해진 빛때문에 짧은 신음을 토하면서 조금씩 눈을 뜨려고 애썼다. 그의 눈에서 솟아 나오려는 초록빛을 본 순간 Havf-35는 처음으로 시야가 흐려지고 가슴이 불필요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순간, 그녀는 이 알 수 없는 상태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이야기 들에서 보았던 바로 그 감정을. 그리고 그녀는 일시정지 되었다. 


다시 깨어난 그녀는 다른 승무원으로부터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에드워드 콜린. 그는 귀족간 행성 정복전의 수비측 행성에서 차출된 군인으로 전투중 적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긴급 탈출했고 생명유지 장치에서 의식을 잃은 채 표류하다가 열차에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승무원들은 그의 구제와 처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승무원들에게 부여된 역할은 장기 수면 중인 승객의 관리였기 때문에 외부의 인간까지 보호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더는 만약 우리 열차가 모종의 이유로 난파되어 승객이 우주공간에 표류한다면 누군가 거두어 주기를 바라지 않겠냐고 승무원들을 설득했다. 마더가 계산한 인과율에는 열차가 난파되는 경우도 포함된 것일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 에드워드 콜린의 처분은 일단 그의 건강이 회복된 후까지로 미루어졌다. 마더는 그의 회복 담당으로 Havf-35를 지정했다. 그녀가 다른 승무원에 비해 깨어 있는 인간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드워드 콜린을 간호하면서 그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회복캡슐에 있는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기록보관소에서처럼 그에 대한 역사를 그의 일기와 편지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겐 고향에 두고 온 약혼녀가 있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는 전역후 약혼녀와 결혼할 계획이었다. 그의 부모가 개척행성의 작물재배를 했던 것처럼 그는 약혼녀가 좋아하던 꽃을 재배할 계획이었다. 그녀는 그가 의식을 되찾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그의 일기와 편지 그리고 기록보관소의 이야기들을 읽어주었다. 그가 약혼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들에는 희망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이 적혀 있고 일기에는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 내려는 기도가 적혀 있었다. 그 두 내용 사이의 먼 거리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녀는 가슴 한 쪽이 무겁게 내리 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돌본 시간이 1년이 지났을 때 그가 깨어나기를 바라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그의 의식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는 발가락을 꿈틀거리더니 초록빛 눈을 떴다. 이내 탈출 당시의 긴박한 전투중으로 돌아간 것처럼 발작하던 그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 마더는 그에게 열차의 승객이 되어 초장기 수면에 들것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았지만 그는 Havf-35에게 감사를 표한 뒤 당장 고향 행성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 우주에서 가장 빠른 이 열차가 1년간 이동한 거리를 속도가 느린 탈출선으로 되돌아 간다는 건 무리였다. 몇 십년이 걸릴지, 제대로 항로 설정이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모든 승무원이 일시정지에 들어간 시간에 그는 구식 탈출선을 탔다. 목적지는 고향 행성이었다. 동시에 마더는 승무원 하나의 교신이 끊어질 듯 말 듯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딸아, 네가 열차의 충전 자장을 벗어나면 너는 망가질거야. 너는 그렇게 설계 되어있어. 흔적 없이 망각하고 돌이킬 수 없이 노쇠할 거야. 결국 인간처럼 영원히 멈출 때까지.” 마더가 말했다. 


열차 안에서는 그녀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중력에 이끌려 추락한 것인지 자유를 찾아 파란 하늘로 날아간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이와 같은 다분히 비유적 표현은 훨씬 더 나중에 장기 수면에서 깨어난 인간들이 기록보관소를 보고 나서야 떠올리게 될 의문점이었다. 지금으로선 그보다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은 짧은 순간의 이야기가 먼저다. 


그녀가 열차에서 내린 후 25년이 지났을 때 마더에게 첫번째 교신이 왔다. 그로부터 5년에 한번씩 정확히 그녀가 열차에서 내린 날에 마더는 꺼졌던 Havf-35의 신호가 켜지고 교신을 받았다. Havf-35는 아니 이제 그녀의 이름은 버드 콜린이다. 두 사람은 폐허가 된 고향 행성에 도착했다. 전쟁은 수비행성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두 귀족 진영의 피해가 막심했다. 에드워드 콜린은 약혼녀를 찾아갔으나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희생되고 말았다. 절망한 에드워드 곁에 있던 건 Havf-35 아니, 버드였다. 그의 아픔을 치유한 버드는 그와 결혼해 아이를 하나 두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꽃을 재배해 거대한 농지를 가꾸었다고 했다. 마더가 받은 마지막 교신은 120년 후였다. 열차의 안드로이드가 충전없이 버틸 수 있는 시한을 20년 넘긴 시간이었다. 


“마더, 언젠가 열차가 우리 행성을 지날 때면 가까이 와서 하루만 정거해주세요. 멀리서도 우리가 가꾼 초록색 꽃들이 그곳 에서도 희미한 점처럼 빛날 거에요”


마더는 이미 100년 전 항로지도에 에드워드 콜린이 고향행성이라고 말했던 행성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에드워드 콜린의 행성은 전쟁에서 패했다. 그렇다면 버드 콜린의 교신은 무엇이었을까? 안드로이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녀가 자장에서 멀어진 때문에 실패를 망각하고 절망을 노쇠하게 한 것일까? 그녀가 인간처럼 불완전한 꿈을 꾼 것일까? 하나의 이야기를 쓴 것일까? 마더는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열차는 계속해서 항해한다. 한참을. 그 말조차 가루가 될 만큼 먼 거리를.  


열차에는 우주의 종착지에 도착하려 자원한 무모한 승객들이 완전한 승무원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창백하고 푸른 열차가 어디로 향하는 지에 대한 마지막 세번째 이론은 조금 무책임하다. 열차는 바닥이나 하늘을 향하지 가지 않고 그저 중턱의 어떤 정거장을 향해서 간다는 이론. 정거장에서 영원을 항해해온 열차는 다른 곳으로부터 그만큼 날아왔을 또 다른 열차를 만난다는 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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