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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Mar 03. 2019

[영화] 플립 - 여전히 사랑으로

영화 '플립'리뷰

여전히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라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슬로건은 가슴 뒤에 회색 미세먼지가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마치 몰래 울기 좋으라고 만든 것 같은 어두운 네모상자로 천만명을 불러 모았다. 첫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영화의 장면 위에 자기의 아름답게 왜곡된 기억들을 마치 증강현실처럼 얹어서 영화의 미장센에 층위를 입힌다. 일반적으로 감독이 대다수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면들은 식상함을 만들곤 한다. 그래서 이미 너무나 많은 영화 스토리와 기발한 메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감독의 고민거리는 조금 더 겸손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만은 막자 라는 과제. 이런 세상에 어쩌면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그런 우려 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소재인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처음이라 하더라도 기발함과는 거리가 멀고, 도처에 널린 것이 사랑노래지만, 누구도 멋대로 재생되곤 하는 첫사랑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영화의 스토리는 어릴적 줄리의 동네로 이사온 브라이언이 줄리의 귀여운 대쉬에 당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줄리는 브라이언의 부분인 깊은 눈에 반해서 먼저 그를 좋아하게 된다. 줄리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 브라이언이라는 사람 전체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려 한다. 브라이언은 마음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 즉 ‘정직’에 서투른 아이이다. 그런 미숙함으로 인해 줄리가 자신을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낫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 와중에 브라이언은 줄리의 행동과 배경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가진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에 솔직하는 법을 배운다. 두 사람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할 때 영화는 어른에게 문제와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역할을 모두 준다. 줄리는 부분이 전체로서 어울릴 때 이뤄지는 마법의 비밀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브라이언은 섹소폰 연주를 하고 싶었으나 자신을 속였던 아버지가 극복하지 못했던 마음의 정직을 극복해 나간다. 서로의 다른 마음을 뒤집어(플립) 장면으로 담던 카메라는 잘렸던 나무가 줄리 집 앞마당으로 이사 오는 시점에 하나로 합쳐진다. 


플립은 관객이 몰래 벗어나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첫사랑이 주는 풋풋함은 시골 마을의 푸른 숲이 내뿜는 청명한 향기처럼 퍼져 있다. 향기는 인물 사이에서 간간히 드러나는 푸른 나무와 풍경들로부터 뿜어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윽함의 대부분은 다른 것이 채우고 있다. 관객이 소년과 소녀의 서툰 행동과 나레이션을 들으면서 그 순수한 속마음을 추측하는 과정을 통해 향기는 공감을 전한다. 시청각을 넘어서려는 것이 멀티플랙스의 신기술이라면, 기억을 일깨운다는 오래된 원칙을 가지고 영화는 두 개의 감각과 식상함을 넘는다. 아이들의 작지만 진지한 고민들이 그들 시선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관객에게 전달될 때 관객은 당시의 고민들이 절대 작지 않았으며 중요했음을 기억한다. 영화에 깊이 빠져들수록 그 향기가 가리키는 곳은 첫사랑 자체라기 보다는 진지한 관심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줄리 – 풍경화는 정물화를 모은 것보다 크다]

 줄리를 성장시킨 것은 풍경화의 가치를 받아들인 것에 있다. 줄리는 처음에개별 혹은 부분을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녀였다. 줄리는 브라이스의 내면을 충분히 알지 않은 상태에서 ‘아름다운 눈’만을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자신을 멀리하는 브라이스를 수줍음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또한 자신이 아끼던 한 그루의 가 잘려 갈 때 마치 세상이 모두 무너진 것처럼 받아들였다.  줄리의 아버지는 부분이 전체를 이룰 때 드러나는 삶의 마법을 줄리에게 들려준다. "풍경 전체를 봐야지. 그림은 그저 풍경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야.... 나뭇가지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그저 빛줄기일 뿐이고. 하지만 모든 게 한데 어우러지면 마법이 되거든". 그 마법은 줄리가 해질녘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에서. 스스로 가꾸는 정원에서.  삼촌이 저 멀리 이야기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가족으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들 속에서 발견된다.


[브라이언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브라이언은 달걀을 통째로 삼키는 뱀의 이미지에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브라이언은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이 감겨 죽을 뻔했는데 그 트라우마는 줄리 삼촌이 실제로 겪었던 사건이다. 줄리 삼촌은 그로 인해 정신의 성장이 멈춰있는데, 운이 좋았던 자신의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겉이 멋진 사람들을 사귀던 브라이언이 내면을 바라보게끔 만든다. 브라이언은 위선과 편견의 세계(껍질)을 깨고 나옮으로써 타인(줄리)를 바로 볼 수 있게된다. 그의 눈이 아름답다는 줄리의 착각은 영화의 마지막에 현실이 된다. 


[여전히 사랑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면] 

영화는 사랑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마음을 다시 우리 마음 속에 심는다. 브라이언이 무심결에 줄리의 정원을 더럽다고 한 것이 줄리에게 계기가 되었듯이, 줄리가 브라이언에게 달걀을 주는 것은 브라이언의 기존의 세계를 깨고 나오도록 계기를 제공한 것과 상응한다. 사랑의 멋진 점은 그다지 믿을 수 없는 것이 합당한 타인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과 지지를 갖게끔 한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타인에 대한 불필요하고 당황스러운 관심을 처음으로 겪는 일일 것이다. 기억을 거슬러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가 당황때문이었다면, 우리가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없는 이유는 불필요함 때문일 것이다. 단지 나이만 들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는 지금도 우리는 사랑하려 한다. 불필요한 관심이 너무나 반갑고,  당신 삶의 당황스러움에 관심이 가는 사랑을. 

플립은 다시 헛된 마음을 심는다. 여전히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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