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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Mar 27. 2019

[가사] 기억을 걷는 시간

어떤 환승역은 한쪽 끝에 연결되어 있다. 투명한 유리문 앞에 비친 흐릿한 사람들이 있고, 갈 곳이 있을 뿐 아직 기다려야 할 때마다 나는 8-4에서 1-1까지 32개의 문 옆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래도 과거로는 갈 수 없고, 삶은 별로 길지도 않으면서 시간의 보폭을 고르게 펴 바르지 않는다.


32개의 문이 닫혀 있으나, 검은 터널 안은 그대로 보인다. 그 문은 사람들을 실어 나를 때에만 열리므로, 기다리는 동안 벽 너머를 다른 식으로 상상해볼 수도, 열릴 때 공허한 진실로 들어가 볼 수도 없다. 감출 게 없는 벽과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사람은 난민이 된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간발의 엇갈림은 마주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한 점의 우연을 8-4까지 한 줄로 늘린다. 조급한 마음은 확률을 높이려고 걸음을 좌우로 흔든다. 곁눈질이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그 사람을 찾지만 지하철이 먼저 와서 사람들을 다 앗아간다. 나는 설레 이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닫는다. 눈꺼풀 너머를 다른 식으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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