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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의대지 Apr 05. 2019

[역사적 사건]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1953년 5월 29일 :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르다.

꽤나 오래전에 친구와 함께간 2월의 제주도에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한라산에 오른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름도 몰랐던 아이젠을 사는 건 왠지 젊음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대신에 고기국수를 배신할 수 없어서) 사지 않고 오른 것이 고통의 두번째 원인이었다. 물론 첫번째는 2월에 한라산에 간 것. 산에 오를 때는 그나마 견딜만 했지만 내려올 때는 너무나 미끄러워서 눈 썰매를 타듯이 신발로 일부러 미끄러지면서 내려왔었는데,  어쨋든 한라산 정상에 올랐을 때, 바람이 휘몰아쳐서 눈도 제대로 뜰수 없었지만 뭔가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에베레스트 산은 지구상에서 해발기준으로 가장 높은(약 8800미터) 산이다. 산의 높이가 8~9배 정도 높아질 때 산의 험준함과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격은 몇배가 될 것인가. 어쩌면 그런 호기심이 세계의 많은 산악인들의 발검을을 산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5월29일 오전 11:30분에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최초로 등반한 사람들의 이름은 백과사전에 남았지만, 산의 차가운 아우성 속에 영원히 쉬게된 (Ever-rest) 사람들의 이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빽빽한 페인트통 속에 하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산에 대해 유명한 잠언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주말의 직장인 등산궐기대회에서 유래된 말로, "어자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나"가 있고, 두번째는 조지 허버트 리 멜러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Because it is there)" 라고 대답한 문장이다. 삶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길고, 힘들다는 측면에서 마라톤에 자주 비유되지만, 거기에 더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려갈 때는 올라갈 일을 염두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산을 오르는 일도 삶과 비슷해 보인다.  

때때로 삶은 그저 허무해 보인다. 삶을 허무하게 느끼게 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한 얼굴로 찾아오곤 하지만산에 대한 잠언으로 표현하자면 "어자피 죽을 거 왜 사냐"의 변주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벌어진 좋은일과 나쁜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으며, 우리 자신도 우리에게 벌어진 일 중의 하나라는 자각. 그래서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거나 핏줄을 잇는 것에 열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느 날에, 삶은 단지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두번째 잠언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단지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오른 일이 위대한 것은 정상이 무엇을 약속하기 때문은 아니다. 정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에 비한다면, 그러니까 정상에 오르겠다는 꿈을 가진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아우성을 이겨내려 기도하는 시간,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 동료를 다독이던 시간, 그 시간을 놓지 않는 주먹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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