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돼.

인생의 전환점을 맞다.

by 별빛햇살

두 아이를 키우며 캐나다에서 직장인으로 살던 나. 여느 직장맘들처럼 나도 매일매일 멘탈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힘들어도 ‘나는 잘하고 있다. 내 삶은 행복하다’ 끊임없이 되뇌며 버텼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이라 말했다. 배려심 많고 성실한 남편과 바르게 자라는 아이들과 남 부럽지 않은 직장을 가진 우리 부부. 큰 사건 사고 없이 지금처럼만 산다면 인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원체 물욕이 없는 사람들이라 경제적으로도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고, 이 무탈한 삶에 만족을 못 한다면 그건 배부른 건방진 소리이겠지 생각했다.


사실 나는 항상 불안했다.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답답한 마음에 혼자 울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항상 침착하고 멘탈이 강해 보이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아마도 그래야 더 사람 좋아 보이고, 믿음직스러워 보일 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평생 눈치 보며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마음이 곪아가고 있었다. 매일 두통에 시달렸고, 운전하는 출근길에는 ‘이러다 갑자기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졌고, 고혈압도 생겼다. 사실 건강이 이상 신호를 보낸 적은 예전에도 몇 번 있었다. 죽을 병은 아니었던지라 어느 정도 회복되면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지금 당장 죽는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생각해 봤다. 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 커리어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것을 후회할 것 같았다. 좀 더 즐거운 일들에 시간을 많이 쓸 걸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어느 날, 오랫동안 알았던 지인이 암투병 중에 돌아가셨다. 그 밝고 아름답던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느 가족들보다도 행복해 보였고, 완벽해 보였던 가족이었는데, 그들에게 그런 시련이 닥쳤다는 게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고,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상황도 잘 모르면서, “곧 나을 거야. 분명 이겨낼 거야.” 같은 멍청한 문자를 보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왜 난 당연히 나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했고 쓰라렸다.


하지만 모든 건 이미 끝 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제야 드는 늦은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동안 생각났고, 오랫동안 믿기지가 않았다.


나와 같은 세대의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40대인 우리가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생소했다. 나는 너무 철이 없었다. 죽음은 이제 우리 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았다. 전화를 하면,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오빠도 여러 상황들이 이상하게 여겨져서 검진을 받으러 갔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땐 걱정과 슬픔과 안타까움도 컸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자식도 못 알아본다는 그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그때 나는 알츠하이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다. 70대인데도 여전히 일을 하고, 신체 활동도 많고, 사람들도 매일 만나는데, 어떻게 그런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가 있지? 그리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예상치 못했던 불행한 소식들을 차례로 접하자, 나는 흔히 말하는 마지노선에 도달했던 것 같다. 뭘 더 견딘다는 게 우스웠다. 도대체 뭘 견뎌야 하지? 왜 견뎌야 하지? 견딘다는 게 뭔데? 그게 누구를 위한 건데?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넘어, 삶과 죽음과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들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사는 게 뭐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고 싶지?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우선 분명한 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뭐라도 내려놓아야 할 때였다. 나의 건강이나 가족의 건강을 내려놓을 순 없었다.


결국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미루고 미루었던 퇴사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