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그렇게 빡빡한 건 아니야.
퇴사 후 2년이 지났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곤 있지만 어디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 일 보다는 지금 맞이한 인생의 전환점을 어떻게 잘 보낼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더 숙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제는 ‘아등바등 살지 않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퇴사를 한 후 얼마간 참 좋았다. 아니, 지금도 좋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바쁘게 출근 준비하지 않아서 좋고, 업무 생각에 낮이고 밤이고 머리가 아프지 않아서 좋다. 여유롭게 남편과 아이들 도시락 싸주는 것도 좋고, 구석구석 미뤄왔던 정리정돈을 하는 것도 좋다. 예전엔 퇴근 먼저 하는 사람이 급하게 저녁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가족이 먹고 싶은 것을 조금은 공 들여 요리해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한국에 다녀올 시간이 있는 것도 좋고, 엄마와 가족들과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좋다. 몸과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두 달 만에 고혈압이 정상으로 내려갔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퇴사는 가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번 사는 인생, 뭔가 거창하게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완전히 버리진 못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아라’, ‘최선을 다 해라’, ‘성공해라’라는 말을 하고, 또 들으며 살아간다.
20대 때 나의 좌우명은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와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였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 글귀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도전, 열정, 패기 같은 단어들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한다. 단지 지금은 건강, 행복, 평안, 그런 단어들도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 나는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결혼도 해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도 다녀봤고, 캐나다에서 이민자로서의 생활도 시작해 봤다. 두 아이를 키우며 외국에서 학위와 자격증도 따봤고, 직장생활도 해봤다.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살아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살아라’, ‘악착같이 해내라’라는 말들보다 ‘이미 잘했다’, ‘넘어져도 된다’, ‘쉬어가도 된다’라는 말들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는 것은 더 나에게 필요하다는 뜻은 아닐까. 어쩌면 정말 지칠 대로 지쳐서 꼭 쉬어갈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을 비우는 건 쉽지 않다. 나도 여전히 불안감이 수시로 스며든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항상 경쟁하는 사회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그동안의 가치관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멈추는 것은 계속하는 것만큼 힘들다. 앞으로 펼쳐질 불확실한 세계가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크게 멀리 봤을 때 무엇이 자신을 위한 일인지 생각해 보자. 인생은 전력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개구리가 뜀박질할 때 한껏 웅크렸다 뛰어오르듯, 우리도 한 번씩은 웅크리고 에너지를 모아줘야 한다. 그래야 뛰어오를 힘도 생기는 거니까.
힘들 땐 쉬어 가자. 마음의 건강을 살피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인생이 그렇게 빡빡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