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
친정 엄마는 객관적으로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나진 않으시다. 젊은 시절 사는 게 팍팍해서 주로 배를 채울 목적으로 급히 밥을 지으셨다 보니, 그 습관이 이어져 지금도 음식의 맛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엄마도 잘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부침개'이다.
엄마는 '정구지 찌짐'을 자주 해주셨다. '정구지 찌짐'은 '부추전'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부추전은 나를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가는 추억의 음식이다. 엄마는 특별한 것 없이 설렁설렁 만드는데도 부침개만큼은 간도 딱 맞고 식감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내셨다.
학창 시절, 가끔 아침에 도시락 준비가 늦어지면, 엄마는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 경비실에 도시락을 맡겨놓으셨다. 그럴 때는 주로 따끈한 부침개가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친구들과 큼직한 부침개 여러 장을 눈 깜짝할 새에 나눠먹었다. 어떤 친구는 우리 집이 혹시 부침개 장사를 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 떨어져 살면서 엄마표 부침개를 먹을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엄마가 캐나다에 자주 오래 머무시기 시작했고, 엄마표 부침개를 다시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주로 냉장고를 털어서 야채전, 김치전, 부추전을 만드셨다. 우리 가족 모두 참 좋아했다. "진짜 맛있어요"를 남발했다. 엄마는 "별 것도 아닌데 대개 좋아하네" 하시며 쑥스러운 듯 싱글벙글 웃으셨다.
치매 초기인 엄마는 그렇게 캐나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침개를 만드셨다. 어제도 먹었고, 그저께도 먹었지만, 오늘도 만드셨다. 다른 음식은 전혀 하지 않는데, 전 부치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엄마, 어제도 먹었잖아. 이제 부침개 그만하자."
"뭐? 어제도 먹었다고?"
"응. 저녁밥도 먹어야 되는데 지금 이거 먹으면 밥 못 먹으니까 넣어놓자."
"그래? 알았다."
내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엄마는 오후 서너 시쯤 야채를 꺼내고, 채를 썰고, 밀가루를 버무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셨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엄마를 소파에 앉히고, 뜨개질 재료를 손에 쥐어드리고, 채 썰다만 야채들을 주워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부침개는 엄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까.
어떤 기억이길래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드시는 걸까.
질리도록 먹고 있는 이 부침개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도 오는 걸까.
지금껏 부침개는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지만,
언젠가는 부엌에서 야채를 썰고 있는 자그마한 엄마의 모습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