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디까지 알고 싶니?
"엄마, 엄마도 소녀시대랑 슈퍼주니어 알아?"
"알지. 설마... 그것도 학교에서 배웠어?"
둘째 아이는 고2. 세계사 수업시간에 BTS, 삼성, 오징어게임 얘기가 나왔다고 할 때는 '그럴 만도 하지' 생각했다. 그들이 세계를 휩쓴 것은 명백하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까지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는 'K-pop 세계화의 기원이라도 공부하나?', '한국을 어디까지 배우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 뿜뿜 솟아오르고, 입꼬리 씰룩씰룩 올라가는 것은 덤이었다. 물론 선생님에 따라 수업내용에 조금씩 차이는 있다.
열 페이지 남짓 빽빽한 한국사 프린트물. 분량이 일본과 얼추 비슷하다. 지정학적 위치부터 식민지, 한국전쟁, 역대 대통령들, 재벌, 오징어게임, K-pop 등 꽤 상세하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선진국이라는 말에 뭉클해진다.
내가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던 2000년, 홈스테이 주인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몰랐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출신인지 남한출신인지 물었다. 캐나다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남한을 도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가끔 있었다. 당시 한국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K-컬쳐의 급격한 성장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다.
2010년, 우리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했고, 나는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모든 문화생활을 단절했었다.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한국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도 없었다.
2020년,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세계를 점령했을 때에도 나는 그 노래를 몰랐다.
학부모 모임에서 캐나다 엄마들이 K-pop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친구들이 K-pop을 좋아한다는 얘긴 들었지만, 몇몇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나는 그런 현상들이 생경했다.
"BTS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 한 엄마가 말했다.
"나는 사실... 모르는데..." 내가 말했다. 서로 멀뚱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이 BTS가 누군지 한번 들어나 보자.'
유튜브에서 노래 한번, 뮤직비디오 한번, 토크쇼 한번. 그러자 구글과 유튜브는 무한 알고리즘을 통해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안내했다. K-아줌마의 덕질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웠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래서 한국을 빛내준 이 젊은이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음악, 춤, 사람뿐 아니라, 전체적인 프로덕션과 디테일도 격이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의 높은 문화 수준이 자랑스러웠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문화생활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다. 외국에서 콘텐츠를 접하기가 훨씬 쉬워진 덕분이기도 했다. 많은 연예인들이 나를 거쳐갔다. 물론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K-컬쳐가 뻗어나가는 속도와 양상은 놀라울 정도이다.
최근 둘째 아이와 친구를 차에 태워줄 일이 있었다. 차에는 '악동뮤지션'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친구는 차에 타자마자, "오! 악뮤!"라고 했다. "아빠랑 맨날 같이 들어요!"
아니, 너는 그렇다 치고 너희 아빠가? 한국과 무관한 가족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니 친근감이 수십 배 치솟는다. 이제는 아이돌 음악만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가 세대를 넘나들며 뻗어나간다. 언어장벽조차 뛰어넘으면서 말이다.
나는 첫째 아이의 친구에게 1년 넘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중이다. '스트레이키즈'와 '아이유' 노래가사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 나에게 음악과 드라마를 추천도 해준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작년에 밴쿠버에서 축구선수 손흥민의 경기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콘서트를 볼 기회가 있었다. 국보급 한국인들에게 환호하는 캐나다인들 곁에서 함께 감동을 나누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K-영화와 K-드라마가 넷플릭스를 가득 메우고, K-푸드와 K-화장품이 상점의 선반을 점령해 간다.
한국과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춤을 익히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은 세계인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얼마 전 남편이 BTS 컴백과 월드투어 일정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BTS 월드투어 일정 나왔는데 밴쿠버는 없더라."
"아, 그래? 나도 모르는 걸 어디서 본 거야?"
"CBC. 나중에라도 혹시 밴쿠버가 포함되는지 한번 보자."
CBC는 캐나다 국영방송이다. BTS 월드투어가 CBC에 큼지막히 떴다.
이민자들은 K-컬쳐 급부상의 덕을 톡톡히 본다. 유학생이나 여행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차별이 줄어든 느낌이다.
예전엔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으면 과연 한국을 알까 싶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하고 여유롭게 대답한다.
"I am from South Korea."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