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아빠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아빠 이야기를 절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누구 하나 그러자고 한 적도 없고, 꼭 그래야 했던 이유도 없는데, 아빠 이야기는 암묵적인 금기사항이 되었다.
아빠는 어느 날 한 순간에 우리를 떠나셨고, 우리는 슬픔을 느꼈지만, 서로를 위해 슬픔을 내보이지 않았다.
장례식 이후, 우리는 함께 울지 않았다. 함께 웃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았다.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세 식구가 안방에 모여있는데 TV에 우스운 장면이 나왔다.
엄마가 갑자기 피식 웃으셨다.
나는 눈치를 보았다.
'이제 웃어도 되는 건가?'
오빠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웃음을 찾아나갔다.
앞날을 향해 조심스레 한 발짝 내디뎌보았다.
우리가 아빠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는 데에는 십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삶을 무너뜨렸던 옛 기억을 담담히 떠올리는 데에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했다.
얼마 전 친정오빠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하늘나라에서는 늙지도 않을 텐데, 나중에 우리가 하늘에서 아빠를 만나면,
'우와, 아빠 아직도 이렇게 어려? 머리카락도 까맣고, 주름도 없네!' 이러는 거 아닐까?"
아빠는 마흔넷에 돌아가셨고, 오빠와 나는 이제 사십 대 후반을 향하고 있다.
하늘나라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늙지 않는다면, 정말 나보다 어린 젊은 아빠를 만날 수도 있는 걸까?
아빠가 돌아가신 지 36년이 된 지금, 이제 이런 농담까지 할 만큼 편히 아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나는 간혹 아빠 이야기에 생뚱맞게 눈물을 왈칵 쏟을 때가 여전히 있다.
어린 시절 눈물을 제대로 흘려보내지 못한 채, 혹시나 남들 앞에서 새어 나올까 꼭꼭 잠가두기만 했었기에,
어쩌면 나는 항상 눈물이 찰랑찰랑 가득 찬, 살짝만 툭 건드려도 흘러넘칠 수 있는 상태로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나는 내 안의 슬픔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자라서 돌아보니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슬픔을 힘겹게 겪어내고 있었다.
엄마와 오빠와 나는
각자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고, 쏟고, 잠가두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