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떠난 오빠는 술을 마시면 가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흐느끼며, 엄마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말했다.
"야가 와 이라노. 니가 받아봐라." 엄마는 다급히 나에게 전화를 넘기셨다.
그러면 오빠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도 사랑하고, 니도 사랑한데이."
나는 목멘 소리로 대답을 얼버무리다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엄마와 나는 돌아서서 각자 옷소매에 눈물을 찍어냈다.
오빠는 일찍 철이 들었고, 나는 늦게 철이 들었다.
두 살 많은 것을 감안해도, 오빠는 나보다 훨씬 성숙했다.
아빠가 돌아가시자 오빠는 엄마를 가엾게 여겼다.
나는 나만의 슬픔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오빠는 똑똑했고, 재밌었고, 당당했다.
오빠는 항상 주목받았고, 나는 그의 그늘에 가려졌다.
나는 관심과 기대를 덜 받으며 자랐다.
나는 그늘 속에서 자주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오빠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끼진 않았다.
그저 오빠가 감탄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나의 슬픔과 가능성을 읽어내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아쉬움은 오래 남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오빠를 향한 시샘이나 미움은 없었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어렸던 오빠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 밝았던 어린 오빠는 어떤 슬픔을 누르고 있었을까 싶어 마음이 저려온다.
어렸지만 강인했던 그 시절의 오빠가 참 고맙고, 대견하다.
여전히 가족을 지탱하며 최선을 다하는 중년의 오빠도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
나는 오빠의 그늘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 그늘은 '한여름의 뙤약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이었다.
내가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고, 풀내음과 산들바람을 느끼며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해준, 그런 그늘이었다.
제 글에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