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내가 듣지 못한 말. 아이에게 꼭 하는 말.

by 별빛햇살

어린 시절 나에게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여서 일찌감치 포기했던 걸까? 나를 누군가가 진심으로 믿어줬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를 결정적으로 무너트린 날이 있었다.


고1 때 엄마는 어느 유명한 학원의 수학특설반 입학시험에 나를 데려가셨다. 수학영재 정도는 되어야 들어가는 곳 같았다. 온갖 특설반에 당연히 들어가는 오빠를 보시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생각으로 데려가셨던 것 같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손이 떨렸다. 나는 결국 울면서 교실을 나왔다. 학교 수학성적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런 특설반에 들어갈 수학실력은 아니었다.


울면서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물었다. "못 풀겠드나?" 나는 대답했다. "응."


그 눈빛은 왠지 '아, 얘는 크게 별 볼 일 없겠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공부'라는 영역에서 반대쪽으로 분류된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러 가지 장래희망들이 있었다. 엄마의 반응은 보통 둘 중 하나였다.


"왜 그런 (쓸데없는) 걸 하려고 하냐?" 아니면 "네가 그런 (대단한) 걸 어떻게 하냐?"


첫 번째 문장은 직업을 무시했고, 두 번째 문장은 나를 무시했다. 엄마는 왜 그러셨을까. 더 현실적인 장래희망을 가지길 바라셨을까? 그냥 나의 모든 것들이 못 미더우셨을까? 당장 마음 고쳐먹으라고 더 공격적인 표현을 고르셨을까?


엄마는 내가 잘 되길 바라셨을 거다. 엄마 나름의 노력이었을 거다. 엄마는 주위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전공을 자주 권하셨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관심 없는 분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밥벌이에 괜찮다는 전공을 여기저기서 듣고 오셔서 나에게 권하셨다.


어쩌면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며 같이 상의하고 결정할 배우자가 없었던 것도 영향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친구나 친척들의 말에 더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전혀 모르는데도 말이다. 자식의 미래를 혼자 생각해야 하는 부담감과 불안감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비록 나의 인생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말들의 가장 큰 부작용은 나를 이렇다 할 꿈도, 공부할 의욕도 없는 아이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큰 열정이나 목표 없이 그럭저럭 공부했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철이 늦게 드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잘해나갔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아,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캐나다에서 나의 첫째 아이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알아서 하게 두는 스타일이다. 방과 후에 피아노와 축구는 했지만, 교과과목을 따로 학원이나 과외로 공부시키진 않았다. (참고로 캐나다에도 주요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과 과외가 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수학을 거의 가르치지 않았고, 아직 곱셈 나눗셈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미 한국보다 한참 느린 캐나다 정규교육과정의 속도에 비해서도 이건 정말 느렸다. 아무리 우리가 방목하듯이 아이를 키우지만 이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슬슬 불만을 나타냈다. 특히나 아이가 수학에 완전히 흥미나 자신감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담임선생님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구몬수학에 아이를 데리고 가보았다. 선생님이 평가를 위해 시험지를 주셨다. 왜인지 선생님은 아이 바로 앞에 앉아서 문제 푸는 걸 빤히 쳐다보셨다. 아이는 훨씬 더 긴장돼 보였고, 잠시 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문제를 풀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평가 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현재 학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네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러면 본인 학년 수준이 되려면 얼마나 해야 될까요?" 선생님은 "1년을 해도 안될 것 같은데요."라고 하셨다.


우리는 학원을 나왔고, 나는 아직도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수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이야. 네가 평생 사칙연산을 못할 리는 없어. 지금부터 하면 되니까 걱정 마.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저 선생님은 너를 몰라. 저 선생님이 너에 대해 하는 평가는 절대 신경 쓰지 마."


아이는 당연히 수학학원에 다니기 싫어했고, 나와 남편도 아이를 그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귀가 얇았다면 '큰일이다' 생각하며 얼른 등록했겠지만, 나는 귀가 매우 두껍다. 사람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특히 그들에게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더더욱.


그날 이후, 남편과 나는 매일 30분씩 번갈아가며 아이와 수학공부를 했다 (정확히는 산수공부). 덧셈 뺄셈부터 곱셈 나눗셈 등등, 우리는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나갔다. 아이는 곧 수학에 자신감이 붙었고, 수학을 잘한다는 학교평가를 받는 데에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구몬 선생님이 말한 1년 이상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아빠와의 공부는 끝이 났고, 그 이후 아이는 모든 걸 스스로 해나갔다.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항상 수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우리는 아이를 믿었고 아이는 믿음에 부응했다. 아이는 지금 대학생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말한다. "너의 능력과 잠재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어릴 때 이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이 말을 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그리고 그 말의 영향력을 안다.


혹시 아이들이 못 미더워도 한 때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아이를 불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아이들의 속도는 다르다.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항상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엄마 아빠가 있어서 행운이지?" 아이는 말한다. "당연하지. 100%!" 그 대답에는 고마움과 믿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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