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면 엄마를 이해한다는데...

그건 모르겠지만, 깨달은 건 있다.

by 별빛햇살

'엄마가 정말 그렇게 잘못했나?'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내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엄마 이야기는 몇 시간을 고치고 또 고친다. 긍정적인 글도 부정적인 글도 있었다. '애증'이라는 표현도 썼다. 내가 받은 상처를 써야 글이 나아가는데, 그렇다고 엄마를 나쁘게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결핍이 엄마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엄마 이야기가 자꾸 부각되는 것도 괜스레 미안하다.


이런 말이 떠오른다.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못하면 '저 사람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네', 백 번 못하다가 한 번 잘하면 '저 사람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네'. 내가 엄마에게 심한 상처를 받았던 시간들은 내 인생에 열 번쯤 될까? 비록 모진 말로 비수를 꽂긴 했지만, 수십 년간 열 번 정도라면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허용 가능한 수준인가? 드라마에도 그런 일들은 많지 않나?


어린 시절의 고마웠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남편을 여의고 어려웠지만 열심히 살아주신 것, 의식주를 제공해 주신 것, 점심저녁 도시락 싸주신 것, 학교와 학원 데려다주신 것, 고등학교 때 보약 지어주신 것, 야간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집에 가도 항상 맛있는 음식 시켜주신 것, 수능시험날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기도하신 것 등등.


한 번은 내가 갖고 싶다던 농구화를 사주신 적이 있다. 나는 너무 기뻤다. 농구화도 좋았지만,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걸 기억하고 나를 위해 그걸 사 오셨다는 게 너무 좋았다. 물론 다른 것도 많이 받으며 살았겠지만, 그날이 특별히 기억난다.


이 모든 건 참으로 평범해 보인다. 엄마는 남들만큼 하신 것 같다.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걸까?


엄마는 나의 출산일 두 번 모두 오지 않으셨다. 며칠 후 조리원에 있을 때 잠깐 왔다가 내려가셨다. 엄마는 대구에 살며 일을 하셨고, 나는 경기도에 살았다.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딸이 아이를 낳으면 보통 엄마는 바로 가보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걸로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그냥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다. 이건 상처도 아니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아이가 폐렴이나 독감에 걸려서 어린이집에 갈 수 없을 때에는 KTX를 타고 바로 올라와서 며칠씩 아이를 봐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정상출근을 할 수 있었고, 아이가 나으면 엄마는 대구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종종 돈을 주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던 적이 있다. 따뜻한 말도 행동도 없이 딸에게 가끔씩 돈을 툭 건네고 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 '이 돈 갖고 사라져'라고 말하는 모습들과 교차하곤 했다. 참 배부른 소리 한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혹시 돈은 엄마에게 가장 필요했고,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걸 줬던 건 아닌지, 그렇게 하면 내가 고마워하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갑자기 나를 거실로 부르고는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너는 혹시 내가 재혼을 한다면 어떻겠노?"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가 하얘졌다. 몇 초간 생각하다 대답했다. "엄마만 좋으면 괜찮아." 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시며 엄마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그 후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다. 그 당시 만나는 분이 있으셨는지, 주위에서 재혼하라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껏 평생을 혼자 살아오셨다. 그건 내가 엄마에게 준 상처였을까. 나는 그것을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은 사이였을 것이다. 엄마만 준 것도, 나만 받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 병도 주고 약도 주고 했을 것이다.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과정이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를 이해한다는데 나는 자식을 낳자 더더욱 이해 안 되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이해하고 말고가 우리 인생에 더 이상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나는 좋았던 기억들을 몇 개 부여잡고, 여전히 엄마와 웃고, 떠들고, 효도하고 그냥 그렇게 산다. 지금 옛 기억에 머무르며 상처를 곱씹어서 뭐 하나 싶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게 필요했던 건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에게 건네는 '사랑한다' '보고 싶다' '언제 오냐' 뭐 그런 말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말이 어색하다면 애정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 있었어야 했다. 내가 이제껏 받아온 것은 의무감에 의해 기계적으로 제공되는 의식주 같은 것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곤 했다.


어린 시절 내게 부족했던 것들을 내 아이들은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믿는다' '고맙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눈빛, 음성, 행동들도 주의한다. 아이들은 말뿐만 아니라 모든 작은 디테일을 보고 듣고 느낀다. 부모님이 자신을 아끼는지 아닌지 아이들은 바로 알아챈다.


'부모니까 표현을 안 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줄 알겠지'라고 짐작하는 건 착각인 것 같다. 부모는 가장 큰 사랑을 줘야 하는 존재이므로 가장 많은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안정감 있게 자랄 수 있다.


나는 말을 가려서 한다. 화가 나도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에이, 그 정도야 언젠간 잊어버리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들은 절대 못 잊을 수도 있다.


'우리도 부모이길 떠나서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부모의 감정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존감을 낮추고, 관계에 금을 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적당한 때에 아이와 대화를 한다. 목소리는 높이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백번 잘하다 한번 못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우리의 건강한 부모자식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항상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아주 큰 존재이다. 그들에게 부모는 온 세상이다. 아직 마음이 단단히 여물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그 큰 존재이자 온 세상인 부모가 상처를 주면 아이들은 깊게 베인다. 여린 살에 상처가 더 쉽게 생기는 것처럼.


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과 믿음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도록 하고 싶다. 언제나 기댈 수 있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부모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믿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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