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글 쓸 때 신난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보통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번역일을 했다. 대학생 때 본전공 외에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했던 나는 어학연수를 한 후 바로 번역일을 시작했다. 나는 영어도 좋아했고, 글쓰기도 좋아했다. 번역작가라는 타이틀과 그들의 자유로움이 멋져 보였다. 순수창작과는 다르지만 작문능력이 중요한 번역일은 매력적이었다.
환경서적 2권을 영한번역해서 출판할 기회가 있었다. 봐줄 게 전혀 없던 나에게 출판사 대표님께서 그 일을 주셨다는 건 여전히 신기하다. 대표님께 보낸 이메일에는 본전공(환경 관련)과 영문과 복수전공을 접목하여 번역을 매우 잘할 것이며, 토익점수가 OOO이라는 소름 돋게 유치하고 사소한 스펙과 열정과 패기가 들어 있었다. 이후 대표님께서는 사실 스펙이 더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무모함과 진정성을 참신하게 느끼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기서적은 아니었던지라 곧 절판되었지만 고맙고 좋은 경험이었다. 출간 후 처음엔 그저 기뻤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의 부족한 번역실력이 많이 쑥스럽게 느껴졌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을 되새기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 후 나는 번역을 접고 안정된 직장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조금 지쳤던 것도 같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도 좋았다. 그리고는 업무와 관련된 보고서와 간간히 일기를 쓰는 것 이외에는 쓰지 않으며 살았다.
30대에 들어선 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던 중 문득 웹툰을 번역해보고 싶었다. 웹툰 세계화의 초창기 시절이었다. 웹툰번역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꽤 유명한 웹툰기업이었다. 지원서를 넣었지만 아주 정중하고 정성스러운 '거절'이메일을 받았다. 번역업무에 비해서 나의 스펙이 너무 높다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답장 감사드린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게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다. 졸업 후 나는 또다시 본전공에 맞춘 직장의 세계에 들어섰다.
언젠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여행작가가 되고 싶었고, 인생이 무르익어갈 때는 수필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꿈은 가정을 꾸리고 책임이 더해질수록 나날이 흐려져 갔다.
세상에는 3종류의 일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이 중 한 가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에 들어맞는 일이 본인의 직업일 수 있을 테다.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나는 과연 그런 일을 내 평생에 해볼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죽도록 하고 싶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현실과 이상이 뒤엉키곤 한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희 아빠는 항상 나이 들면 수필을 쓰겠다고 하셨지." 하지만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다.
친정오빠는 취미로 소설을 쓴다. 오빠는 한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재 전혀 다른 일을 한다.
첫째 아이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아이는 위의 3가지를 충족하는 직업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집안에 우리도 모르는 창작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적성과 흥미를 발휘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남들 기준에 적당한 직업을 찾아 살아가는 운명에 처해졌던 건 아닐까.
브런치를 알게 된 후 글을 많이 쓰게 되었다. 글을 쓸 때 즐겁고 신난다. 그런데 동시에 허무하고 부질없는 기분도 든다. 나는 언제까지 꾸준히 이곳에서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이유로 어떤 목표로 어떤 수준의 글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쓴다. 단지 좋아서 글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이런 시간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주는 걸까. 아니, 이끌어주기는 하는 걸까. 나에게 어릴 때의 무모하고 순진했던 열정은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
40세를 '불혹'이라 부른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인생의 중심을 잡고 동요 없이 나아가는 시기.
40대의 중반에서 나는 여전히 '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