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죽음은 다르다.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

by 별빛햇살

캐나다에서 장례식을 여러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다. 이곳의 장례문화는 한국과 꽤 다르다. 다민족 국가라 집안마다 준수하는 전통이 다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내가 보았던 캐나다의 보편적인 현대식 장례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꺼내볼까 한다.


한국에서 장례식장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엄숙한 공간이다. 죽음은 끝이자 고통이라는 인식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치르는 3일장은 꽤 정형화된 모습이다.


캐나다의 장례식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죽음은 기본적으로 눈물을 껴안고 있다. 고인이 젊거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 슬픔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장례식장에서는 사람들이 마치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안고 웃으며 살아가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3일장처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빠르게 장례식을 치를 필요는 없다. 화장이나 매장처럼 시간 제약이 있는 절차는 유족들이 상황에 맞게 미리 진행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의식은 보다 유연하게 몇 주 또는 몇 달 후에 치르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은 더 평온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유가족들은 이미 많이 울었고, 이미 많이 추스렀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Funeral(장례식)' 또는 'Celebration of Life(삶을 기리는 추모식)'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둘은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Funeral'이 조금 더 전통적이고 엄중한 '장례식'의 느낌이라면, 'Celebration of Life'는 여기에 밝음과 따스함을 가미한 '추모식'의 느낌이다. 유가족이 세세한 절차는 결정하고, 이 두 가지 형태는 상황에 맞게 조합될 수도 있다.


'Celebration'은 '축하' 또는 '기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Celebration of Life'는 고인이 살아낸 삶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자리이다. 고인이 이 지구에서, 이 역사에서, 잠시나마 함께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추억하고 경축하는 자리이다.


의식에서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단상에 올라가 고인이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웃음과 감동이 있다. 어떨 때는 마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은 듯이 모두가 크게 웃는다. 그러다가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또다시 눈물을 훔친다.


고인이 분홍색을 좋아했다면 모두가 분홍색 옷을 차려입고 고인을 기릴 수도 있다. 고인이 미술을 좋아했다면 고인의 미술작품들을 전시할 수도 있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을 틀고, 고인의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그의 발자취를 함께 돌아본다.


그들은 고인의 '죽음'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고인의 '삶'에 초점을 둔다.


고인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주변인들에게 가져다주었던 사랑과 웃음을 추억한다.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죽음을 뒤로하고 그래도 걸어가야 할 앞날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들은 마치 죽음이 결국 삶의 일부이고,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말이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하는 것만 같다.


내가 언젠가 이 생의 끝을 맞이할 때, 나도 어쩌면 남은 이들이 슬픔에 빠져있기보다는,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랄 것 같다. 나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려주는 것도 고맙지만, 어서 마음을 추스르고 즐겁게 살아주는 것도 고마울 것 같다.


처음에는 생소했던 이곳의 장례문화를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모든 삶은 기억될 가치가 있기에...

남은 자는 살아야 하고, 남은 생은 행복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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