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흐름대로 막 써 내려가는 글
눈을 떴을 때부터 온몸이 피곤하고 기분이 착잡했다. 어기적어기적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습관처럼 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색 머그컵에 차를 마실까. "회색". 회색이고 싶은 날이다. 얼그레이 티백을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차가 우려 지도록 잠시 내버려 둔다. 아이 도시락과 나의 아침식사용 샌드위치를 만든다. 만들다 보니 그새 차가 다 식었다. 대충 전자레인지에 차를 다시 데운다. 설탕과 크림을 넣는다.
남편은 일찌감치 개를 산책시키고 첫째 아이와 함께 집을 떠났다. 이제 둘째 아이가 학교로 출발한다.
"Have a good day. I love you." 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습관처럼 '브런치'를 켜고 샌드위치를 씹고 차를 홀짝인다. 한 잔으로는 모자란다.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더 붓고, 우려낼 것도 없는 티백을 더 우린다. 브런치 글을 읽는다. 감동적인 글, 소소한 글, 교훈이 있는 글, 지식이 있는 글, 그리고 슬픈 글...
오늘의 원래 계획은 대청소였다. 그런데 왠지 온몸이 축축 늘어지는 이 기분. 아픈 건 아닌데 피곤하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멍멍이가 보인다. 그 옆에 누워 개를 쓰다듬는다. '그래. 오늘은 좀 천천히 가자.'
며칠 후에는 남편과 결혼 20주년 기념 3박 4일 여행을 떠난다. 아이들은 대학생과 고등학생. 이제 다 컸다고 걱정 말고 신나게 다녀오란다. 알아서 학교도 가고, 밥도 해 먹고, 개도 돌보고 다 한단다. 누가 언제 개를 산책시킬 것인지 정하느라 투닥투닥거린다. 미더움 반, 못 미더움 반이다. 하지만 작은 도전들을 통해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겠지. 스스로 결정하고 실수도 하면서 아이들은 자립심을 배울 것이다. 며칠 동안 아이들끼리 잘 지낼지는 반신반의하지만, 이런 작은 기회들이 아이들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나갈 거라는 것도 안다.
밴쿠버의 가을과 겨울은 온종일 비가 온다. 지금도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어두컴컴. 소낙비가 올 때도 보슬비가 올 때도 있다. 어쨌든 기본값은 '비'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눈도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안 온다. 밴쿠버의 겨울은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둡고 축축하다.
이곳은 겨울에 해가 짧다. 동지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 해가 있다. 낮에도 흐리거나 비가 와서 항상 우중충하다. 그나마 우리는 남쪽지역이라 해가 긴 편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해는 몇 시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시기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의 삶은 무난한데도 이렇게 가라앉는다. 비타민 D를 먹어야 하나. 모르겠다.
물에 빠지면 아래로 쑤욱 빨려드는 기분이랄까. 그럴 땐 최대한 빨리 팔다리로 반동을 주며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한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더 깊게 빠져들어간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 빠져나와야 한다. 이런 낌새가 보일 땐 운동을 가거나 청소를 하거나 노래를 한다. 그래, 이제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자. 하지만 이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걸...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이 크다. 2년 전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 비슷하게 일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하는 둥 마는 둥하다. 계속 하고 싶은지, 관두지 못해서 살짝 걸쳐만 두는지 항상 헷갈린다. 그렇게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내 인생을 투자했던 것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이 일에 열정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나를 증명하기에만 급급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뭘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불확실한 엄마의 건강이 가장 큰 변수이다. 그로 인해 내가 언제 엄마에게 더 필요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을 더 크게 벌일 수도,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는 것이 크다. 그런데 그런 핑계를 대는 내가 싫다. 그냥 내가 일하기 싫은 거 아닌가? 일이 들어오면 들어와서 불안하고, 일이 안 들어오면 안 들어와서 불안하다. 남편이 충분히 월급을 가져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는 건가? 사회에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일까 봐 불안한 것 같다. 불안함. 공허함. 허무함. 나도 잘 모르겠다. 갱년기 초기 증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갱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샌드위치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 자식들 좀 키워놓으니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가운데에 낀 우리 세대들을 칭하는 말이란다. 빵과 빵 사이의 햄이나 치즈 같은 나. 아무래도 맞는 말 같다.
'생로병사'라는 말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생'과 '로'와 '사'까지는 당연하다 생각했었는데, '병'이 예전보다 크게 와닿는다. '병'이 정말로 자연의 순리였던 것이다. 엄마도 나도 거의 모든 사람이 거쳐가는 단계인 것이다. '병'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그런 일이 없기를 순진하게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 생각했다면 잘 받아들였을 수도 있는데...
엄마는 나의 결혼을 반대하셨다. '근본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면서 남편뿐만 아니라 시댁식구들에게 모조리 막말을 쏟아내셨다. 세상사 웃긴다. 그런 사위는 흔쾌히 장모님을 일 년에 몇 개월씩 캐나다에서 모신다. 엄마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지시긴 했다. 이제 내 남편의 별명은 '엄친사'. '엄마친구사위'이다. 어디 가서나 자랑하는 사위. 세상 살고 볼 일이다. 엄마 눈에 지금의 남편은 미워할 구석이 없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연봉 센 직장인. 돈을 잘 못 벌었으면 엄마가 사위를 얼마나 싫어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나는 남편이 나이 들고 병들어도 잘해줘야지 생각한다. 세상에서 제일 잘해줘야지...
나에게 우울과 불안은 반대의 개념인 것 같다. 일이 너무 많고 외부적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를 때 찾아오는 것은 불안이었다. 심장이 쿵쾅대는 불안함. 일이 너무 없고 내부적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를 때 찾아오는 것은 우울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가라앉음.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더 깊이 가라앉기 전에 허우적거리며 물 위로 숨구멍을 찾아서 발버둥 쳐야 한다. 나는 복에 겨운 여자다. 이런 건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증 축에도 끼지 않는다. 어쩌면 그냥 '감성' 정도일지도 모른다. 아마 잠깐 이러다 말 것이다.
'우울증 코스프레하지 말고 그만 나와라.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