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by Hee언니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들었다. 토도도독 떨어지는 빗소리에 지지 않으려 했다. 울지 않으려 했다. 그도 울지 않았다.


비 오는 밤, 남산을 올라갔다. 숨이 차올라서였을까. 여전히 말이 없다. 손을 잡고 걸어 내려오는 길에 계단의 개수를 일일이 세어봤다. 비 오는 날 이런 풍경 좋지 않냐며 애써 웃었다. 다정한 연인들의 포옹을 바라보며 여기가 이런 곳이었다며 농담을 건넸다.

내일이면 헤어질 연인들이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왜 이제야 이곳에 왔을까. 5년 동안 우린 무얼 한 걸까.


거세지는 빗줄기에 같이 휩쓸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라도 붙잡아 주길 바란 걸까. 그는 끝까지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왜 붙잡지 않냐 묻지 않았다,


오늘 밤은 같이 있으면 안 되냐는 그의 말을 애써 거절했다. 마지막 밤을 함께 지새운다고 우리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하지 못한 말들을 남겨둔 채 헤어졌다.







그의 차를 타고 동생과 함께 공항으로 왔다. 헤어지는 연인들의 작별 키스 따윈 없었다.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까 봐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헛된 미련을 두지 않으려 빠른 이별을 했다.


이게 최선인 걸까. 아직도 헷갈린다. 낯선 땅의 목표물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냥 가지 말까.


@photo by pixabay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손짓을 한다. 뛰어온다.

나에게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순간 멈칫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모든 시간이 정지 됐다. 그녀의 다급한 외침만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조선희 님! 조선희 님! 맞으시죠? 자카르타행 맞죠? 빨리 오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내 이름이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겨우 비행기 문이 닫히기 직전, 좌석에 앉았다.


왜 그랬을까. 괜히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착각했다. 헤어짐에 넋을 놓고 있다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비행기를 놓쳤다면 어땠을까. 가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을까. 그녀의 외침은 너의 행운을 놓치지 말라는 신호였을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땅을 향해 왜 붙잡지 않느냐 물었다. 안녕이라 말하는 그의 대답이 가슴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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