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아저씨는 구글이 싫다고 하셨어

by Hee언니


"뚜룬"


길 한복판에서 택시 아저씨는 내리라 한다.

왠지 안 내리고 한마디를 더 했다가는 뭔 일이 날지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웬만해선 화내는 일이 없다는데, 저 정도 표정이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

본능적으로 얼른 문을 열었다.


집도 사람도 없는 시골 국도쯤 되는 황량한 도로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설마, 국제 미아가 된 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유난히 택시가 없는 날이었다. 요즘처럼 택시 부르는 앱도 없던 시절, 인도네시아 말 조금 할 줄 안다고 콜택시를 겨우 부르던 시절이었다.


세계적인 교통 체증 도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날은 차가 막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택시가 없다. 100번을 전화 걸어봐도 배차가 안된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건물 밖으로 일단 나가보자. 가드가 빈차를 잡아주겠다며 나섰지만, 없다. 택시가 정말 1도 안 보인다.

한참을 기다리다 빈차의 불빛이 얼마나 반갑던지, 냅다 올라타려는데 가드가 저걸 탈거냐 물어본다.


짝퉁 블루버드.(외국인들은 가장 안전한 블루버드 택시를 타라고 항상 들어왔다.)


피곤한 몸이 뭔 일 나겠냐며 그냥 타라고 재촉한다. 에라 모르겠다 좌석에 급히 몸을 실었다. 대충 길은 알지만 그래도 구글맵을 켜 지도 위에 빨간 동그라미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라. 웬 좌회전 깜빡이?


"Pak, Ke mana? Kenapa ke kiri?"

아저씨, 어디로 가세요? 왜 왼쪽으로 가요?






순간 겁이 나서 외쳤던 한마디 말에 6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버려졌다.

아저씨는 왜 내리라고 했을까. 우리 집은 직진만 30분 하면 왼쪽에 딱 보이는 누가 봐도 잘 보이고 쉬운 길에 있는데. 왜 좌회전을 하려 했을까.

좌회전 깜빡이 방향으로 지도를 확대해본다.

허허벌판이다. 어디까지 돌아가려고 했을까.

아니, 나를 집에 데려다 줄 마음은 있었을까.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해는 점점 더 멀어지며 어둠을 몰고 오고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다, 웃다가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 부르스.

경찰서는 어디였지, 112가 여기선 뭐더라, 사이 나쁜 사장한테 전화하긴 싫은데, 그래도 하는 게 나을까.

아까 가드는 남자 친구처럼 택시 번호를 적어놓지는 않았겠지.


욕이라도 실컷 하고 싶었지만 들어줄 이 하나 없었다. 엄마한테 털어놓자니 걱정만 하실 것 같고, 그러니 거기는 왜 갔냐고 욕먹을게 뻔했다.

이 국 만 리에서 개고생 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황당한 불행까지 나에게 찾아올 일인가. 정말 무섭고 서럽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던데 이런 건가.

나는 이렇게 외딴곳에서 처녀귀신이 되는 건가.


그렇게 황당함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머리를 이고 당황하지 않은 척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다행히 행운은 나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저 멀리 택시가 보인다.



블루버드


파란 택시를 보는 순간 이제껏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 난 다시는 짝퉁을 취급하지 않는다.


택시 아저씨한테 강퇴 당해 국제미아가 될뻔한 그날의 해프닝은 10년이 지난 지금 급하게 서두르지 말자는 다짐을 심어준다. 순간의 안전불감증은 어쩌면 겪지 않았어도 될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그날의 아찔했던 해프닝은 인생의 값비싼 교훈으로 자리매김했다.


짝퉁 빈 택시 한 대가 행운인 줄 알았는데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들어 줄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불행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

그런데 짝퉁 블루버드 보내고 진퉁 블루버드가 금방 나타나는 걸 보면, 불행 뒤에는 꼭 행운이 따라오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내 그림자처럼 불행과 행운은 늘 공존한다. 예상치 못 한 불행 뒤에는 행운이 찾아올 거란 기대를 버리지 말자.


오늘도 불행에 갇혀있지 말고 벗어나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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