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나라가 2대 3으로 가나에게 패했다. 경기의 결과는 아쉬웠지만 열심히 땀 흘리며 뛰는 선수들의 모습에 갑자기 울컥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100분.
넓디넓은 잔디밭의 초록이 축구장을 뛰어다니던 옛 시절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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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산소 학번이라며 좋아하던 새내기 대학생.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입학과 동시에 산소 학번은 산소 부족으로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로 매일 노천극장으로 연습을 갔다. 월드컵 개막식 행사 연습이었다.
처음엔 월드컵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우린 포졸이었다. 열심히 깃발을 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군무 1학년.
3월이 다 가도록 미팅 한번 못해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깃발만 들고 뛰어다녔다. 연습만 하면 괜찮았겠지만 우린 눈치 없는 무용과 1학년이었다. 줄을 못 서서 혼나고, 순서 안 맞았다고 혼나고, 깃발을 떨어뜨린다고 혼쭐이 났다.
혼나는 이유도 가지가지, 교수님이 쏘아 올린 작은 채찍질은 강사, 강사에서 조교, 조교에서 4학년, 3학년, 2학년으로 밀리고 밀려 온갖 폭풍에 날아가는 건 우리 1학년이었다.
그렇게 무더운 날 서럽게 뛰어다니던 포졸들은 결전의 시간에 다가섰다. 행사 당일 처음 가본 월드컵 경기장은 삼엄했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잔디 보호를 위해 리허설도 못 해보고 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의 격한 환호를 받으며 입장했다.
뭔 잔디가 그렇게 소중하길래 연습도 못하게 하냐며 속으로 투덜거리며 푸르른 잔디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너무나도 부드럽고 촉촉한 그 감촉은 실로 놀라웠다. 이제껏 그런 잔디는 없었다. 4년 만의 축제 같은 세계적인 경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했을 것인가. 여러 사람들의 노고가 한 번의 발디딤으로 느껴졌다.
감동의 도가니도 잠시, 현실로 돌아와 보니 힘이 든다. 정말 축구장은 너무 넓다. 연습하던 노천 극장은 미니미 수준이었다.
넓어도 너무 넓다.
골대 사이를 쉴세 없이 오가는 어제의 선수들을 보고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우리 포졸들은 단지 몇 분 왔다 갔다 해도 힘이 든다 투덜댔는데, 그 넓디넓은 곳을 땀 흘리며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은 실로 경의로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순간을 견디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제 경기는 너무나도 아쉽게 졌지만, 다음 경기는 더욱더 열렬히 소리 지르며 응원할 생각이다. 우리 대표팀의 빛나는 노력에 힘을 보태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