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월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숙제, 건강 검진을 했다.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가 건강 검진을 코로나로 미루고 미뤄 턱걸이로 작년 11월에 하는 바람에 어쩌다가 1년에 한 번 검진을 받게 됐다. 지난번에 비수면 위 내시경을 처음으로 해봤다. 신랑은 금방 끝난다며 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다들 한다는데 나라고 못하겠냐며 용기를 내봤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따라오긴 했지만, 수면 내시경을 할 때의 몽롱하고 기분 나쁜 느낌은 없었다. 고통은 순식간이었고, 금방 끝나서 오히려 나한테는 잘 맞았다.(고통을 즐기는 스타일, 변태인가.)
대수롭지 않게 오늘도 내시경실에 들어섰다. 간호사가 준비하는 걸 보는 순간, 아는 고통이 생각나면서 수면으로 할 걸 그랬다며 후회 아닌 후회가 들었다.
이미 간호사가 주는 가스 빼는 약을 들이켰고, 목 마취제를 뿌렸다. 작년에는 목 마취제도 늦게 뿌리는 바람에 거의 생목으로 호스가 들어갔지만, 오늘은 마취는 잘 된 것 같다. 다행이다.
"시작합니다."
"흡 웩 웩 꾸웩"
찢어지는 듯한 목구멍 안으로 호스가 끝도 없이 들어갔다. 어떻게 저렇게 긴 호스가 들어가는 건지 암만 생각해도 인체는 신비롭다. 괴로워하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간호사는 연신 호흡을 하라 일러줬다. 애를 낳을 때 보다 더 열심히 마시고 내쉬고 숨을 쉬었다. 세심하게 호흡을 이끌어준 간호사 덕분에 딴생각도 가능했다. 애도 낳았는데 금방이지. 고통을 이기려 좋은 생각을 해보고자 애를 썼다.
아. 맞다. 오늘의 저녁은 호텔 뷔페가 기다리고 있다.
뷔페라면 이까이꺼 참을 수 있어.
작년 이맘때, 코로나로 못 보던 친지들이 작은 아버님 생일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모였다.
OO호텔 뷔페. 뷔페에 가본 지가 언제였던가. 오랜만이라 더 좋고, 비싸고 맛있는 곳이라 더 반가웠다. 세 접시를 먹을까 네 접시를 먹을까 생각하다 다섯 접시는 먹어야 되지 않겠냐며 야심 차게 마음을 먹고 식당으로 갔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어색한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뒤로 숨었다. 그것도 잠시, 찜통 가득 들어있는 대게를 보고 물개 박수를 쳤다. 결국 애초에 마음먹었던 다섯 접시는 고사하고 신랑과 나는 입 벌리고 기다리는 삼 형제를 위해 게만 까다가 집으로 왔다. 수북이 쌓인 게 껍질을 바라보며 아직은 뷔페를 올 때가 아니라며 다시는 뷔페를 가지 말자 외쳤다.
오늘, 감사하게도 작은 아버님은 생신이라며 또 초대를 해주셨다. 아이들도 좀 더 자랐으니 맛있는 것 좀 먹을 수 있으려나. 오늘 이 건강 검진이 끝나면 호텔 뷔페에 간다. 위 내시경을 한다고 어젯밤 굶었던 괴로움을 보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배가 터지도록 먹을 것이다. 버티자. 버티는 거야. 버티면 되는 거야.
"끝났습니다."
라는 말과 동시에 목구멍에서 커다란 뱀이 빠져나왔다. 시원하게 눈물을 쏟으며 부어오른 목에 침을 삼켰다. 고통을 참아내며 무사히 끝마친 자신을 칭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지만 거하게 먹을 저녁을 생각하니 콧노래가 나왔다. 다섯 접시 먹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