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 다섯 접시의 부푼 꿈을 안고위 내시경을 마쳤다. 빈 속을 달래기 위해 점심으로 설렁탕에 빨간 양념을 풀어가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고생 한 나를 위해 낮잠을 거하게 한숨 자고 일어났다. 저녁 뷔페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끝냈다. 비장한 각오로 아이들과 어머님을 모시고 출발했다.
작년에는 유치원에 둘째를 데리러 갔는데 하원 버스를 타고 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애를 차에 태웠다. 출발이 늦어졌고, 도로는 막혔다. 결국 주인공처럼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람에 막내 고모님의 이쪽 길이 안 막힌다는 친절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올해는 늦지 말자며 더 일찍 서둘렀다. 평일 퇴근 시간 전의 도로는 한산했다. 뷔페 입장까지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좀이 쑤신 아들 셋을 풀어놓을 곳을 찾아 헤맸다. 건너편 시청 광장이 보인다.
오늘따라 시청 광장에는 행사가 끝난 천막을 철거하는 모습만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잔디밭을 이리저리 뛰었다. 공사 차량이 왔다 갔다 하니 불안하다. 첫째가 시청 글씨를 보더니 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래. 예전에 갔을 때 별거 없었으니, 날도 추운데 잠깐 있다 가면 되겠지.
웬걸. 몇 년 만에 왔더니 뭔가 많아졌다. 군기시유적전시실이 있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포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팡팡 소리를 내며 불빛도 나온다. 이게 웬 떡이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구경을 했다. 아무도 없는 시민청을 누렸다. 1호, 2호와 군기시유적전시실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는데, 입구에서 신랑과 있던 3호에게 누군가 다가온다. 시민청 직원분이 스탬프 투어를 알려주신 것이다. 무언가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불길하다.
시민청은 10주년이었고, 스탬프투어를 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예상치 못한 시민청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물을 준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스탬프 투어에 진심이었다. 요리조리 길을 찾으며 도장을 쾅쾅 찍었다.
아이들은 공사다망하다. 도장만 찍을 수가 없다. 전시된 화면도 봐야 하고 길도 찾아야 한다. 도장을 찍는데도 한참 걸린다. 도장 하나를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꼭 찍어야만 한다는 의지를 기다려줘야 한다. 내가 도장입니다 라는 표시만 찍어도 될 텐데 둘째는 삐뚤게 찍힌 도장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린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길치 엄마의 내비게이션은 자꾸 같은 곳을 맴돌고 있다. 묻고 묻고 또 물어 지그재그로 길을 누비벼 도장을 찾으러 갔다.
도장을 세 개나 더 찍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어머님은 시민청에 들어오지도 않으시고 밖에서 기다리신다. 부부는 무언의 사인의 보내며 vr스크린에 흠뻑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
"이거 충분히 보고, 스탬프는 다음에 다시 와서 또 찍자. 어때?"
아이들은 알고 있다.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는 걸. 원래 무언가를 금방 그만두지 않는데도 바로 다음 스탬프 존을 찾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 스탬프 투어에 진심이다.
겨우 겨우 직원들에게 묻고 또 묻고 화살표를 쫓아 스탬프 투어를 끝냈다. 무려 6개의 노트, 선물도 6개. 시민청 10주년 기념 머그컵이 6개나 생겼다. 갑자기 생긴 컵 6개를 넣을 곳이 없어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쇼핑백까지 챙겨주신 친절한 시청 직원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보낸다.
파란 잉크를 손에 덕지덕지 묻히고 갑자기 컵 부자가 된 우리는 아직도 뷔페에 가질 못했다.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