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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Nov 01. 2023

호텔 뷔페는 고통도 따라오지.

이제 길만 건너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뷔페를 먹을 수 있다.


아직도 못 갔냐 그러실 수 있습니다. 저도 얼른 가고 싶습니다. 아래 글을 보시면 뷔페를 향한 저의 열정적 여정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unstory/291



https://brunch.co.kr/@sunstory/293







로비에 들어서니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긋한 향기에 마음이 들뜬다. 얼른 화장실을 다녀오라 아이들을 재촉했다. 1호는 화장실이 너무 좋다며 호텔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역시 애들도 보는 눈이 있구나. 돈이 좋긴 좋아. 에잇. 눈만 높아졌다.


제일 먼저 로비에 도착한 우리는 친지들을 기다렸다. 아버님은 10남매 중 장남이다. 미국에 계시는 분들, 돌아가신 분들을 제외하고 작은 아버님, 고모님 3분을 늘 뵈었다. 작년 작은 아버님 생신에는 더 많이 모였지만, 오늘은 연세가 많아 먼 거리를 다니기 힘드신 큰 고모님은 오지 못하셨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어른들의 말이 실감이 간다. 한분, 두 분 도착하자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시청까지 놀다 오고 화장실도 가고 인사도 다 했는데, 아직도 입장 시간이 안 됐다. 배꼽시계가 자꾸 울리는 아이들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동태를 살폈다. 이제 슬슬 올라가자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우루루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어쩌다 보니 내가 아이들과 제일 먼저 자리에 도착했다. 어디에 앉을까 두리번거리다 구석의 6인석을 골라 우리 식구만 따로 앉으려 가방을 내려놨다. 직원은 이쪽이 마련된 자리라며 긴 테이블 두 줄을 알려준다. 구석에 찌그러져서 밥이나 열심히 먹으려 했건만. 어디에 앉아야 하는 걸까. 우왕좌왕하는 사이 눈치 없는 1호가 창가 자리를 찜했다. 이 아이는 호텔이 많이 좋은가보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뷰를 차지하다니. 거기가 아니라며 잠깐 있어보라는 엄마의 말을 귀뚱으로도 안 듣는다. 직원은 뒷줄의 자리에 케이크가 있으니 이쪽으로 주인공이 앉으시면 된다 했다. 어머님은 한없는 내리사랑으로 그냥 앉으라 이야기하시며 1호의 맞은편에 앉으셨다.


1호, 2호, 나 셋은 나란히 앉았다. 3호가 그 옆에 앉았다. 아빠를 굳이 옆에 오라고 한다. 우리는 눈치도 없이 1열로 앉아 모든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주인공이 앉는 상석. 신랑은 왜 상석에 앉아 있냐며 눈치를 준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내 생일인 건가.


제가 주인공 입니꽈.


깃발 들고 제일 먼저 도착해 얼떨결에 상석에 앉은 죄의 대가를 치렀다. 자꾸 직원이 나를 바라보며 물어본다. 어른 13명에 아이 3명이 맞냐고 물어본다. 어머님까지 우리 식구가 6 명인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36개월 이전 아이가 한 명이라는 건 확실하다. 생일 케이크를 보관했다가 식사가 끝나면 드릴까 물어본다. 내 생일인 건가.


이제 밥을 먹자고 하는 누군가의 외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호는 야경에 넋이 나갔고, 2호는 빨리 먹자고 난리다. 3호는 아빠한테 게를 외치기 시작했다. 조용히 앉아있는 게 어디냐며 마음을 달랜다. 2호와 함께 음식을 본격적으로 담으러 출발했다. 한 바퀴 돌면서 뭐가 있나 구경을 할 새도 없이 일단 담았다. 일단 고기 또 고기, 종류별로 고기, 2호가 지목한 피자. 자리로 돌아오니 신랑 앞에는 게가 한가득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게만 까다 가겠구나. 그나마 오늘은 2인 1조에서 벗어나 일감 몰아주기가 성립됐다. 배가 고팠던지 평소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 1호가 잘 먹는다. 맛있는 건 애들도 아는구나. 얼씨구나 이때라며 많이 먹으라 이것저것 음식을 권했다.


이제 좀 먹어볼까 싶어서 1차 접시를 출발시켰다. 첫 번 째니깐 조금씩 맛만 보기로. 한 입 먹으려는 순간 2호가 피자를 주문한다. 7살인 그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따라간다. 그래. 이제 먹어볼까. 엄마. 엄마. 엄마. 옆에서 게 껍질 까는 노동자를 보낼 수도 없고. 엉덩이 붙이기 무섭게 다시 출발이다. 스쿼트와 파워 워킹이 절묘하게 섞인 식사 시간, 행복하다. 오늘은 생일날이니깐.


1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 먹었다는 말을 한다. 이어지는 말은 배가 아프다는 말이다. 게만 까던 노동자는 이제 한 접시 겨우 퍼다 나른 음식을 맛보려던 참이다. 화장실 배가 아니라는 아이의 말에 이것만 먹고 약을 사러 가겠다는 그의 말에 내가 갔다 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게만 까다가 집에 갈 뻔한 그에게 바람 쐬고 오라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이제 밥을 다 먹었으니 에너지를 분출할 두 아이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2호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시간을 끌었다. 3호는 사람들에게 애교 섞인 웃음으로 귀여운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머나 세상에. 애들이 크긴 컸구나. 1년 전엔 밥을 먹다 안아주고 로비에서 미친 듯이 서성였다. 아. 뿌듯하도다. 이젠 내 음식을 좀 먹어도 되겠지. 웬걸. 디저트도 같이 가지러 가야 한다.


다행히 근처 약국 문이 열려있어 1호는 약을 먹고 돌아왔다. 시간이 꽤 흘렀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였다. 노래를 부르고 우리 2호는 수줍게 할아버지에게 종이꽃을 선물했다. 기념 촬영까지 하자 드디어 생신 잔치가 끝났다. 끝난 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음식들이 부르고 있는데. 분명 뷔페를 갔는데 배가 고프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고모님 내외를 모셔다 드리기 위해 8명이 차를 탔다. 자동차 3열 1호, 2호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상석의 가시방석에서 빠져나와서 그런가. 이상하게 몸은 불편한데 마음만은 편안하다. 이제 집에만 가면 된다.


고모님 내외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이제 10분 정도만 가면 된다. 아아아악. 뭔가 이상하다.  위내시경을 해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 시내에 갔다고 긴장을 한 걸까. 3열에 끼여서 쭈구리가 된 배가 눌린 걸까. 배가 부글부글 신호를 준다. 혹시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다가 화장실을 갈만한 곳이 있냐 물어봤다. 어머님을 나중에 내려드릴 테니 집으로 먼저 가자는 신랑에게 지금은 괜찮다 했다.

 

괜찮지가 않다. 연세 많은 시어머니를 너무 배려했다. 급하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10분 뒤 지하 주차장에서 어머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시누네까지 갈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빨리 안 오면 어떡하지. 계단으로 뛰어갈 수 있을까. 머리를 써서 그런지 신호는 강해졌다. 아아아악. 늦은 후회를 했다. 어두운 밤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고, 주유소는 없다. 사랑하는 네 남자들과 시어머님 앞에서 엉덩이를 깔 수도 없지 않은가. 아아아아아아악.








길 건너 노란색으로 번쩍이는 OO커피가 보인다. 위급 상황에 나타난 불빛 하나는 1월 1일 일출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다. 손흥민 선수가 경기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며 달려오는 것 같다. 나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내릴게요!"


브레이크를 밟기가 무섭게 냅다 2열 좌석을 접었다. 그 와중에 언제 뜯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물 마른 물티슈 챙겨준 신랑 칭찬해. 아아아아아아악. 뇌에서 화장실이 있다는 소식을 접수했는지, 신호는 더욱 강해졌다. 길을 건너야 한다. 오늘따라 똥줄은 타는데 신호등은 안 바뀐다. 이럴 때만 꼭 이런다는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초록불이 켜지기가 무섭게 냅다 뛰었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매장에 들어갔다. 이럴 때 꼭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아 이놈의 법칙. 계십니까를 외치다 포기하고 혹시 몰라 입구 옆 계단으로 뛰어갔다. OO커피 직원이 내려온다.


"화장실 좀 쓸게요!"


파랗게 질린 얼굴 때문이었을까. 직원은 얼른 올라가라며 안내해 주신다. 화장실에는 비밀번호도 없다. 각박한 세상에 자애로운 행운을 이런 날 만니다니. 아아아아아아악. 오늘따라 바지 지퍼는 왜 이리 이상한지 모르겠다. 도착을 했지만 방심할 수가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이하 생략 합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쑥스럽고 민망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고자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마감을 한 것 같다. 조금만 늦었으면, 으으으으으 상상하기도 싫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병음료 두 개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뷔페를 먹었는데 배가 고프다. 하.


오늘 우연히 그날의 ㅇㅇ커피를 지나갔다. 길을 지나며 고통의 시간이 떠올랐던 것인지 또 신호가 온다. 다행이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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